‘Until the Day’에 이은 통일 연극의 결정판
– 댄스컬 〈통일 리허설〉 리뷰
김은균 편집장
통일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인가 무겁고 낡은 언어가 되어버렸다.
교과서 속 구호처럼 반복되지만, 정작 오늘의 청년 세대에게는 현실감 없는 추상어로 멀어져 있다. 연극 〈통일 리허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은 “통일”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몸으로 보여주고 감정으로 말을 건네고 지금 여기의 언어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대학로의 한 공연 연습실. 공연을 앞둔 극단에 북한에서 온 새 멤버 ‘필주’가 합류하면서 균열이 시작된다. ‘낙하산 캐스팅’이라는 오해, 서로 다른 말투와 연습 방식, 그리고 쌓여온 편견과 질투가 갈등으로 번진다. 연습이 반복될수록 배우들 사이의 긴장은 깊어지고, 필주는 자신이 숨기고 살아온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탈북 과정에서 함께 국경을 넘다 목숨을 잃은 예술 동료의 기억, 그 죄책감과 슬픔은 연습실을 또 하나의 ‘사막’으로 바꿔놓는다. 마침내 분노와 편견이 폭발하는 순간, 이 연극은 더 이상 ‘연습’이 아닌 ‘현실’의 충돌이 된다. 무너진 리허설의 끝에서 배우들은 묻는다.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우리는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는가?”
〈통일 리허설〉의 가장 큰 미덕은 이 무거운 질문을 결코 무겁게만 끌고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대사로 설교하지 않는다. 극이 진지함의 무게로 가라앉을 때마다 ‘김다 역’의 김다 배우와 ‘김동근 역’의 김동근 배우가 등장해 공기를 바꿔놓는다. 연기 학원의 청소부로 분한 김다 배우는 생활 연기의 리얼함과 소탈한 유머를 섞어 무대를 환기시키고 김동근 배우는 여성적인 이미지와 호들갑스러운 리액션으로 장면마다 웃음의 온도를 끌어올린다. 이 두 인물의 코믹한 연기는 한 번 터지고 끝나는 장치가 아니라 양념처럼 계속 번져나오며 극 전체의 리듬을 살린다. 춤과 몸의 언어만으로 밀고 갈 경우 자칫 공허해질 수 있는 지점마다 이들의 웃음 코드가 촘촘히 배치되며 작품을 통통 튀게 만든다. 그 덕분에 〈통일 리허설〉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끝까지 유쾌하고 경쾌한 호흡을 유지한다.
그리고 표현형식으로는 나열식 대사 대신에 춤과 몸의 언어를 전면에 내세운다. 흔히 ‘무용’이라 부르는 형식보다 더 대중적이고 직관적인 ‘춤’의 에너지로 통일이라는 주제를 끌어안는다. 그래서 이 공연은 정확히 말하면 연극이면서도. 동시에 댄스컬(dance+musical)에 가깝다.
무대 위 배우들은 말보다 먼저 움직인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감정이 동작으로 튀어나온다. 불신과 경계는 날카로운 스텝과 엇갈린 동선으로 표현되고, 화해의 순간은 서로의 팔과 어깨가 자연스럽게 맞닿는 군무로 번진다. 특히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에서 터져 나오는 집단 안무는 이 작품의 백미다.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골짜기를 배우들의 호흡과 리듬이 그대로 관객의 몸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통일을 ‘이념’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관계’로 다룬다는 점이다. 남과 북의 문제 이전에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고 일해야 할 때 벌어지는 감정의 마찰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오해, 질투, 열등감, 연민, 동경, 죄책감….
이 모든 감정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혼란은 너무도 오늘의 청년 세대와 닮아 있다. 그래서 이 연극의 통일은 국경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한 은유로 확장된다.
연출은 전반적으로 경쾌하다. 무대는 과도한 장치 없이 배우들의 몸과 조명, 음악으로 밀도 있게 채워진다. 장면 전환 역시 암전보다 동작으로 이어지며, 연습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끊임없이 변주한다. 관객은 어느새 이 연습실 안에 함께 앉아 리허설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배우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의 미덕은 무엇보다 젊다는 점이다. 통일을 다루는 공연에서 흔히 떠올리는 묵직한 톤이나 교훈적 결말 대신 이 연극은 리듬과 에너지로 관객을 설득한다. 슬픔조차도 정지된 ‘눈물’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려는 ‘몸짓’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공연을 보고 나오는 순간, 관객의 마음에는 이상하게도 묘한 희망감이 남는다.
“통일이 가능할까?”라는 질문보다,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면, 뭔가는 바뀌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통일 리허설〉은 말 그대로 우리 시대의 ‘통일 감정 연습장’이다. 이 작품은 완성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함께 흔들리고, 부딪히고, 다시 호흡을 맞춰보자고 제안한다. 그 제안은 무겁지 않고, 따뜻하며, 무엇보다 살아 있다.
‘Until the Day’ 이후, 통일을 다룬 연극 중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가장 감각적인 결정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통일을 다시 젊은 언어로, 다시 몸의 언어로 되살린 이 무대는 오늘날, 우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증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