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더 오리지널 ― 원작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소리극’으로 돌아오다
글 – 김은균 (복지tv 기획피디,공연평론가)
■ 원작으로 돌아간 ‘더 오리지널’, 이청준의 세계를 무대로
이청준의 단편소설 『서편제』(1976)는 1993년 영화로, 2010년 뮤지컬로 무대에 올려지며 시대를 넘어 사랑받았다. 그리고 2025년, 국립정동극장 개관 30주년을 맞아 ‘서편제; 더 오리지널(The Original)’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은 『남도사람』 3부작 ― 1부 ‘서편제’, 2부 ‘소리의 빛’, 3부 ‘선학동 나그네’ ― 를 각색·연출한 고선웅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그는 “원작 텍스트를 충실히 표현해 ‘더 오리지널’에 가깝게 만들고 싶었다”며, “이청준 선생님이 이 무대를 보신다면 행복하셨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밝혔다.
정성숙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는 “우리 고유의 질긴 한(恨)을 예술로 승화하고자 했다”며 “이번 무대에는 ‘춘향가’를 비롯한 총 22곡의 소리가 담겼다. 관객이 ‘진짜 우리 소리’를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원작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도록”… 고선웅 연출의 철학
고선웅 연출은 “어설프고 설부르게 본질을 훼손하지 않도록 했다”며, ‘더 오리지널’이라는 제목에 담긴 의미를 이렇게 풀어냈다.
“어떻게 하면 원작에 가장 가깝게 할지 고민했다. 원작자인 이청준 선생님이 보셨다면 행복해하셨을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는 특히 작품 속 ‘아비’ 캐릭터에 대해 “딸의 눈에 청강수를 부어 눈을 멀게 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하며, “누군가에겐 폭력적이고 비정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 또한 문학 속 캐릭터로서 허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비의 선택은 폭력이 아니라 한(恨)과 사랑이 교차하는 비극적 헌신”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미 많은 선배들이 이 작품을 선보였지만, 나는 억지로 다른 색을 덧입히지 않으려 했다. 원작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고 덧붙였다.
■ “짠하고 안쓰러웠다”… 배우들이 말하는 ‘소녀’와 ‘사내’
소녀 역의 김우정은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소녀가 너무 짠하고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인생에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이나 억울한 일을 누구나 겪잖아요. ‘내가 소녀라면 이런 상황을 달관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무대에 임했습니다.”
‘사내’ 역을 맡은 박성우는 작품과 깊게 맞닿아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저도 어릴 때부터 소리를 했지만, 목이 좋지 않아 그만둬야 했습니다. 여동생도 소리를 했지만 결국 아버지의 강요로 그만뒀죠. 그때 깨달았어요. ‘소리는 강요로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그래서 사내를 연기하며 감정이입이 너무 깊어 후유증이 남을 정도였어요.”
■ 이름 없는 인물들, 그러나 살아 숨 쉬는 ‘소리꾼의 삶’
이번 무대에서 고선웅은 등장인물들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아비, 소녀, 사내 등으로만 불리는 이들은, 실제로 이름 없이 유랑하며 남도의 소리를 전하던 소리꾼들의 상징이다.
그는 “옛 소리꾼들이 이름 없이 떠돌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 원작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라며 “그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건 오히려 문학적 진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비가 딸의 눈을 고의로 멀게 하는 장면에 대해서도 “그 행위는 폭력이 아니라 작품의 본질이자 정체성이다. 문학적으로 허용돼야 할 비극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 ‘서편제’의 계보를 잇는 새로운 소리극
『서편제; 더 오리지널』은 단순한 각색이 아닌, 원작의 정체성과 민족의 한을 이어가는 ‘소리극’으로 완성되었다. 남원시립국악단 악장 임현빈, 퓨전국악 밴드 이날치의 안이호가 아비 역을 맡았고, 소녀 역에는 국립창극단의 김우정과 박지현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정성숙 대표는 “이번 무대를 통해 관객들이 우리의 전통과 정서를 생생히 체험하길 바란다”며,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객들도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기획했다”고 전했다.
『서편제; 더 오리지널』은 10월 17일부터 11월 9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된다.
이청준의 원작이 다시 ‘소리’로 살아나는 무대, 그 울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