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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지금은 김갑수 시대>

엑터타임즈 2026년 01월 26일
96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말(馬) 안에서 인형을 조종하는 말2 역이 그의 데뷔 무대였다. 방황의 시절 무대에서 연기만을 부여잡은 채 그는 하나하나 자신의 세계를 넓혀 나갔고,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넘나들면서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펼쳐 나가고 있다. 선 굵은 연기자, 연기의 달인인 그는 ‘김본좌’로 우뚝 섰다. 바야흐로 지금은 김갑수 시대인 것이다.

1957년 4월 7일 서울에서 태어난 김갑수는 1977년 극단 [현대극장] 1기생으로 연기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는 그리 적지 않은 나이지만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미니홈피, 트위터를 운영하며, 라이딩 사진이라든가 촬영장에서의 재미있는 사진 등을 올려 팬들에게 서비스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극인으로서 그는 1984년 오영진 연극상으로 시작하여, 1991년과 1994년에는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 1991년에는 동아연극제 남자연기상을 각각 수상하였다. 연극으로 다져진 그의 연기력은 영화에서 더욱 빛나 1994년 청룡영화제 남자 조연상, 1995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주연상을 받은 후 2001년에는 모든 연기자들의 꿈인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여러 편의 TV 드라마에도 출연하여, 2001년 KBS연기대상 남자우수연기상, 2006년에는 S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과 SBS 연기대상 10대 스타상을 한꺼번에 받기도 했으며, 2010년에는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극단 [배우세상]과 [김갑수 연기교실]의 대표와 인천전문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있으며, 2009년부터는 대학로 페스티벌 D-Festa 홍보대사 역할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의 트위터에 있는 고백은 배우로서 그의 내면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젠 멀고 긴 터널에서 벗어나고 싶다.
창의력도 떨어지고 대사 외우기조차 힘들다.
하루하루를 그냥 버티는 느낌.
휴∼ 노력해서 얻는 건 뭘까. 자기만족? 만족하지 못한다면.
돈? 얼마나 번다고.인기? ㅎㅎ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되고 싶다. 프로를 간절히 원한다.”
-김갑수의 싸이월드 인삿말

젊은 감각으로 유명하신데?

요즘 트위터에 푹 빠져 있어요. 아주 재밌어요. 쏘셜 네트워크라고 하나요?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는 이만한 게 없어요. 웬만하면 권위의식 이런 거랑은 담쌓고 지내려고 합니다. 미니홈페이지에도 가끔 들어가서 답글을 남기기도 하고 대학생 딸 덕분에 정보도 쉽게 얻고 사진 올리는 것을 부탁하기도 하지요. 스마트폰이 새로 나오면 기종까지 금방 압니다.

트위터나 미니홈페이지도 내 나이에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지만 젊은이나 나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무심하게 지나치기엔 재미있는 게 너무 많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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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이용해 미니홈피에 댓글을 달고 있는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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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즐겨 타는 오토바이 앞에서 포즈를 잡고 환히 웃고 있는 모습

하반기에도 2∼3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는데 왜 이렇게 많이 출연을 하시는지요?

제가 잘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에요. 잘 아는 감독이 부탁하면서 ‘전부터 꼭 같이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거절할 도리가 없더라고요. 귀가 얇다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주는 대로 다 하는 건 아니고 조건이 있어요. 우선 인간미가 있어야 하고 작품에 타당성이 있어야 허락합니다. 악역도 밉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인간미가 있어야 합니다.

극단 운영 때문에 다작을 한다는 말도 들리고, 그래서 김갑수를 더 도와줘야 한다고 말하는 연출자들도 있는 거 같은데요?

연극을 하고 있어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죠. 굳이 어렵다고 말하지 않아도 연극이 힘든 건 다 알지 않나요? 돈도 안 생기고 힘든 일입니다. 연극을 하겠다는 후배들을 보면 걱정이 앞서지만 그 용기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제가 연극하려는 후배들을 먹여 살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들이 설 수 있게 무대를 만들어 줄 수는 있기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드라마 에서 딸로 나온 문근영이 연극 도전에 용기를 준 사람이 ‘김갑수 아버지’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맞아요. 근영이 말은 들은 거 같아요. 일부러 추천하지는 않았어요. 드라마 촬영을 기다리며 얘기할 기회가 자주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연극을 해 보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한 게 전부인데 그걸 흘려듣지 않은 모양이에요. 좋은 도전이지요.

하지만 내 욕심 같아선 연극한다고 알리지 않고 조용히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스타가 연극하는 게 알려지면 여기저기서 인터뷰하자, 만나자고 해서 집중하기가 어려울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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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화백이 그려준 김갑수 스케치

극단 이름이 [배우세상]인데?

연극이 배우의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연극계의 풍토가 기획이나 연출 위주로 돌아가고 배우는 그 밑에 딸려 있는 종속적인 위치에 머무른 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배우 중심의 연극을 표방’하고자 하여 이름을 󰡔배우세상󰡕이라 붙이게 되었습니다. 배우들이 작품 안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등장인물을 새롭게 창조해 보자는 적극적인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극단이나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어떻게 연기를 지도하시는지요?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편입니다. 인생을 더 살았다는 의식도 하지 않고 인생의 조언자가 되어 줄 수는 있는데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는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온 방식이 다 옳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연기라는 것도 어떻게 하라고 강요해서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촬영장에서도 아이들에게 이러쿵저러쿵 얘기하지 않습니다. 경험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연기란 인간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연기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그래도 배움을 통해서 점점 나아지지 않나요?

맞아요. 저는 테크닉보다는 배우의 품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배우는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과연 완벽한 연기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를 보면서, 가령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자신이 추구하는 완벽한 축구를 언제쯤 그라운드 위에서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축구처럼, 연기 역시 수많은 변수를 자신의 표정과 말투와 행동을 통해 의도대로 통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죠.

선수의 조합과 전술적 포메이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축구에의 답을 그라운드에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벵거 감독처럼, 저는 연기가 부족한 사람도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나아진다고 믿습니다.

연극연기와 드라마연기는 차이가 있나요?

몸 전체 대신 바스트 샷 위주로 연기해야 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연극과 영상 연기는 별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매체에 적응하는 시간은 필요하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배우가 꾸준히 연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느 누구는 우수개 소리로 쉬지 않고 연기하는 저를 빗대 ‘생계형 연기자’라고 하시는데 이렇게 꾸준히 연기하는 것 자체가 다양한 배역에 접근할 수 있고 그래서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봅니다.

저는 경험주의 방법론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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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김유진 감독의 <금홍아 금홍아>에서 이상으로 나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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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배우세상] 사무실에서 대본 연습하는 중

배역을 맡을 때 고집하는 기준은?

존재감 없는 역할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신데렐라 언니>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10회까지 하고 죽기로 되어 있었어요. 어떻게 죽는 건지 몰랐고, <제중원> 같은 경우에는 아예 몰랐어요. 대체 마무리를 어떻게 지을 건가 대본을 보면서 ‘아, 이렇게 죽는구나’ 그런데 인물이 죽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전에도 다른 작품을 통해 많이 죽어 봤으니까. 중요한 건 그것이 드라마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으니까요. <제중원>에서는 독립운동의 선구자로서 후대를 위해 사형을 당한 거고, <신데렐라 언니>에선 믿었던 기훈(천정명)을 오해하며 충격을 받아 죽는 건데 그 상황에선 그게 당연하지 않나요?

분명 인물이 죽는 게 살아있는 것보다는 좀 힘든 일이겠지만 요즘은 그 인물이 어떻게 죽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말하자면 드라마라는 전체 그림 안에서 굉장히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건데 그런 점에서 배우는 관객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 것이지요. 저는 몇 회에 출연하는 출연 분량에 대한 욕심보다는 인물의 존재감에 대한 욕심이 더 많습니다.

데뷔는 [현대극장]을 통해 하셨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대학을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고졸 청년이 사회에 나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지요. 고등학교 때 연극반 아이들을 보면서 배우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배우가 되는 방법도 길도 전혀 알지 못했어요. 영화배우도 더빙을 하던 시절이어서 목소리만 좋으면 배우가 되는 줄 알았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해병대’였습니다. 지원서까지 내놓은 후에야 연극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해병대에 지원서를 내놓고 친구들이랑 술을 먹는데, 어떤 친구가 신문 한 면을 제게 보여줬어요. 극단 [현대극장]에서 신인배우를 뽑는다는 광고였어요. 그 즉시 현대극장으로 달려갔죠.

그 신문광고가 해병대에서 연기자로 진로를 바꾸게 한 거네요?

그렇죠. 그 신문 공고를 보지 않았더라면 제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겠죠. 극단 󰡔현대극장󰡕 1기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말이 좋아 배우지 제가 맡은 일은 청소나 잡일뿐이었어요. 가끔 단역으로 무대에 오르기는 했지만 연극의 길은 그리 만만치 않았던 거죠.

그렇게 2년을 보낸 뒤에 이제는 정말로 ‘배우가 뭐냐?’라는 물음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이렇게 생활하면 아무 것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후로 술도 끊고 오로지 연극만 하기 시작했죠. 극단이 제 집이었고, 제 식당이었어요. 연극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지만 배우로서 부족함을 너무 많이 느꼈어요.

그 후로 하루 24시간은 연극과 공부로 채워졌습니다. 포스터를 붙이고 남은 시간에는 도서관이나 미술관, 음악실로 향했습니다. 읽고 있는 책이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고 고흐의 그림이 왜 좋은지도 몰랐고 클래식을 들어도 이게 왜 좋은 음악인지를 몰랐지만 많이 읽고 보고 들으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에 더욱 더 몸부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읽은 S.E. 힌턴의 「아웃사이더」와 로버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제 인생의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은 배우로서 평생의 자산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연극계에서 김갑수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연극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치열하게 산 결과였지요.

잊을 수 없는 스승은?

당연 김상열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은 현대극장의 상임연출이자 살림살이를 맡아하는 총무셨는데, 그 분으로부터 엄격한 훈련과 철저한 시간관리, 그리고 준엄한 연극 정신을 배웠습니다. 극단 󰡔배우세상󰡕을 창단한 것도 선생님의 동의 아래였으니까요. 제가 배우로서 성장을 하게 된 것도 선생님께서 연출하신 <님의 침묵>이라는 작품을 만나면서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제가 주목은 받았지만, 저는 여전히 배우는 아니었어요. 그냥 연극인일 뿐이었죠. 만해(萬海) 한용운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말2에서 많이 성장한 셈이지요. 이때부터 연극인들이 저를 보는 눈빛도 달라졌음을 느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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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님의 침묵>에 만해 한용운으로 분한 김갑수(1984년, 마당 쎄실 극장)

그리고 극단에서 인생의 동반자도 만나셨지요?

예, 지금 배우세상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아내 현금숙입니다. 86년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처가댁의 완강한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했지만 결혼 비용과 신혼방 하나 구할 돈이 없었어요. 처가에서 보증을 서서 돈 2백만 원을 건넸고, 그 돈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했어요. 원래 배우로 활동하던 아내는 결혼과 함께 연극을 접고 대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야만 했었지요.

그러다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됐는데 89년에 KBS 드라마 <역사는 흐른다>에 캐스팅이 되었지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었는데, 연기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래서 1990년에 첫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1992년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태백산맥>으로 세상에 저를 알릴 수가 있었어요.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과 대종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어요. 이후 TV와 영화에서 캐스팅 제의가 꾸준히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로서 입지가 구축되기 시작한 거죠. 그 후로는 탄탄대로라고나 할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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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로 나온 김갑수와 안성기, 김명곤

연기를 대하는 자세나 마음가짐은?

연기자는 내가 선택받는 직업입니다. 연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결국 누군가에 의해 선택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힘들어도 소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저도 데뷔 이후 연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을 느꼈어요. 연기가 너무 안 됐던 거죠. 내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이렇게 어렵나? 결국은 ‘나는 연기에는 자질이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저의 한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기가 안 돼 죽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머리를 자주 빡빡 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검문을 자주 당하기도 하고요. 연기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순재, 신구, 박근형 같은 좋은 선배들의 연기를 관찰하면서 연기를 배웠습니다. 이 선배들이 출연하면 조그만 역할이라도 맡으려 했고 배역이 없으면 무대감독이라도 자청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연습 과정과 리딩부터 막을 올릴 때까지의 모습을 보면서 연기를 익힐 수가 있었죠. 배역을 맡을 때는 항상 진실하려 노력합니다. 항상 진실하게∼ 그 역할에 맞게, 자유롭게 연기한다, 그게 제 신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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