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돈키호테의 출정가
1951년 3월 20일 전라북도 완주에서 태어난 유인촌은 중앙대학교에서 연극영화학 학사와 연극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유인촌은 고등학생 시절 형의 권유로 교회에서 추수감사절 연극의 연출과 연기를 맡으면서 연극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후 형은 오히려 동생이 연기를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1974년 MBC 제6기 공채 탤런트로 본격적인 연기 생활에 돌입하게 되었다. 탤런트 생활을 시작한 지 일 년만인 1975년에 MBC 신인연기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백상예술대상의 신인상, 남우주연상, 인기상을 독차지하기도 하였다. 이후 또 다시 1987년과 1991년, 1992년 연속하여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1987년과 1990년에는 KBS에서 방송연기대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1998년에 제 34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고, 2000년에는 제 10회 이해랑 연극상을 받음으로써 그의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유인촌은 환경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환동운동연합 지도위원과 환경부 환경홍보사절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교수와 아트센터 소장으로서 많은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이후 200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거쳐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직을 거쳐 2008년 2월부터 2011년 1월 현재까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문화부의 수장으로서 문화를 정의해 보신다면?
문화의 가장 큰 목적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지역 소통의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이 문화입니다. 남북은 물론 동서로 갈라진 한국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문화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영남과 호남, 강원, 충청, 제주 등 모든 지역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의 개발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을 이을 수 있는 연결고리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정부만이 할 일도 아닙니다. 기업도 도와야 하고 문화 예술인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한국 연극 100주년 기념식에서
(2008년 3월 28일, 아르코대극장)
초기에는 많이 시끄러웠고 그로 인한 잡음 또한 적지 않았는데요?
사실 본질적으로 변한 건 없어요. 그냥 오히려 순수해서 그랬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감정을 감추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돌출된 거니까 말도 많이 듣고 힘들기도 했죠. 해 보니까 일을 하려면 정말 신념이 필요합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항상 찬반은 있는 거고…. 나 혼자만 옳게 생각한다고 다른 사람이 다 그렇게 동의하는 건 아니잖아요.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증거를 제시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정말 옳은 일이라면 그걸 제시하기 위해선 굉장한 신념이 있어야 해요. 안 그러고 타협하면 변하는 게 없는 거죠. 2년 동안 그렇게 왔습니다. 이제는 숙성을 시켜야죠. 얼마 전 절 잘 아는 사람이 개혁이라는 말 그만해라, 그만 바꾸라고 의견도 주더군요. 그 말도 맞는 것 같긴 합니다만.
배우로서 오랜 기간을 살아왔고, 장관으로서도 최장수 문화부장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마음에 맞고 행복하신가요?
당연히 배우지요. 배우는 천직이에요. 그런데 이것이 마음에 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일은 굉장한 책임감이 따르지요. 사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힘듭니다. 여러 분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민감한 이해 관계들을 조정해야 하잖아요?
배우로서의 영향과 정책적인 영향은 굉장히 다르죠. 그 때는 무언가를 받는 입장이고 지금은 어떻게든지 현장으로 그런 수혜가 가도록 해야 하는 입장이에요. 훨씬 힘들어요. 힘들지만 그런 걸 잘 극복해야죠. 신념이란 옳다고 믿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이 신념이 없다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되니까요.
요즈음에도 많이 걸어 다니시나요?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세종로 한가운데 광화문에서 집까지 걸어 갑니다. 밤 9시에 출발하면 11시 30분이 넘어 도착하지요. 편할 수도 있지만 이런 운동을 통해서 스스로를 ‘불편한 상황’에 두려는 의지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편해지면 그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죠.
연극을 하던 시절에도 공연보다는 연습이 더 즐거웠어요. 두 달이고 석 달이고 같은 내용을 연습하면서도, 매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알기에 가능했던 일이지요.
걷기 예찬론자시네요?
서울문화재단에 사표를 내고 일본대 예술학부 객원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거기에서 걷기의 중요함을 깨달았어요. 걷다 보면 짧고 경쾌한 리듬을 타기 시작하죠. 허리는 똑바로 서 있고 팔 다리가 힘차게 움직입니다. 어느 새 이마에 땀이 맺히고 땀이 방울이 되어 ‘툭’하고 흘러내릴 즈음이면 몸은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앞으로 나갑니다.
이때부터는 걷는 것인지 땅이 저절로 흘러가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몸이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걷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복잡했던 머릿속이 몸의 리듬에 맞춰 맑아집니다. 어젯밤 잠 못 이루게 했던 걱정들이 어느 새 사라지고 마음은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호수처럼 평화로워 지지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걷는 것이 유유자적 산책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일상 생활에서 이동 수단으로 걷는 것이지요. 가능하면 자동차나 전철을 타지 않고 두 다리로 힘차게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려고 합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걷기가 이처럼 커다란 행복감을 주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한때는 서울을 답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울문화지도’를 만드셨지요?
장관으로 취임하기 전에 ‘우리 땅 걷기’라는 국토 종단을 전남 해남에서 서울 청계 광장까지 했어요. 그때 ‘서울 문화지도 그리기’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이는 숨어있는 서울의 이야기를 찾는 작업이지요. 우선은 서울 성곽 답사를 했었는데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출발하여 혜화문에서 성북동, 삼청동, 숙정문으로 해서 세검정, 인왕산을 걸어 사직공원 옆으로 내려왔고, 그 다음에는 남대문을 거쳐 남산에 오른 후 타워호텔, 광화문, 동대문, 이대부속병원, 낙산공원, 한성대역을 거쳐 혜화문까지 걸으면서 답사를 했었지요.
일본 도쿄에선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배낭을 맨 채 걸어 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어디 가세요?”하고 물으면 “우리는 오늘 박물관 가는 날이야”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도쿄에는 그런 상품이 많아요.
그것을 목격하면서 ‘서울에 돌아가면 내가 저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인터넷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매 주 토요일마다 나름의 유적지를 걸으면서 이를 실행하고 있지요.
서울 문화지도를 만든 다음에는 지방으로 내려가 한국 문화지도를 완성할 계획이에요. 한 10년 걸리겠죠. 지금 장관의 임무를 마치고 나면 다시 이 일을 시작할 거예요.
우리 국토를 걸으면서 정말 많은 반성을 했어요. 전 우리 땅이 그렇게 넓은 줄은 몰랐거든요.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정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동안 제 잘난 맛에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지요. 세상에, 제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쳤어요. 평생 봉사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죠.
저는 걷기를 통해 우주의 광활함과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 존재의 미미함,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과 나눔의 기쁨을 터득했지요.
연극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가 언제인가요?
직접적 계기는 한성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예요. 당시 퇴계로의 서울침례교회에서 추수감사절 연극을 준비하는데 형이 연극을 한다는 이유로 제게 연출과 연기를 맡긴 거지요. 그런데 그때의 경험이 제게는 하나의 결정타였어요.
연극이 전부로 느껴졌어요. 아예 공부는 접어두고 연극을 한다며 친구들과 배낭을 메고 무전여행을 다녔지요.
하지만 정작 형님은 제가 연기를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어요. 1년 재수 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합격하자 첫 입학금은 내 주셨지만 좋아하지 않으셨죠.
형님이 드라마 프로듀서로 유명했던 유길촌 피디시지요?
맞아요. 형님은 고대 극회 출신으로 MBC에서 드라마 피디로 일하셨어요. 저는 입대를 앞두고 소속이라도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신인 탤런트 시험에 응시를 했어요. 워낙 지원자가 많아서 여러 반으로 나누어서 면접을 보는데 하필이면 당시 MBC에 근무하시던 큰형(유길촌)이 심사위원으로 앉아 계신 거예요. 순간 멍했지요.
형님은 저를 보시더니 “저 아이는 내 동생인데, 없던 걸로 하겠다”고 하셨죠. 다른 심사위원들이 “아무리 동생이라고 해도 여기까지 왔는데 해 보게라도 해야지”라고 만류하자 형님은 “그러면 나는 심사하지 못 하겠다”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셨어요. 그런데 합격한 거예요.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한 조건은?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체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육체에서 온전한 정신이 깃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연극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다 했습니다.
원래부터 축구나 농구 등 공을 가지고 노는 운동을 잘 했었는데 배우가 되고부터는 다른 사람들과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워 테니스나 골프, 등산, 수영 같은 비교적 한 두 사람과 하는 운동을 하게 되었지요.
그 시절 제가 얼마나 운동을 지독하게 했냐 하면, 배우에게 체력만큼 중요한 것이 호흡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호흡을 길게 하기 위해 25m 풀장을 잠수한 채 왕복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왕복은 하지 못했지만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저 자신을 성장시켰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1995년 극단 유 창단작 <문제적 인간, 연산>의 한 장면.
이혜영, 정규수, 김학철 등과 공연하여 그 해 최다 관객 동원 및 동아 연극상 대상과 개인상 등을 수상한 바 있음
그렇다면 그렇게 닦은 호흡이 발성으로 어떻게 연결이 되지요?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이해랑 선생님 연출로 호암아트홀에서 셰익스피어 <햄릿>에서 제가 주인공인 햄릿을 맡았습니다. 햄릿은 정말이지 대사도 많고 체력 소모가 큰 역할이에요. 저는 다른 어떤 배우들보다도 ‘유인촌의 햄릿’이 빛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욕심에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그 연습 중 하나가 집으로 오는 시간을 이용해 체력을 기르고 대사를 외우며 발성 연습을 하는 것이에요. 밤 11시쯤 연습이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 서소문에 있는 호암아트홀에서 압구정동 집까지 걷다 가다 달리다가 하면서 대사를 외웠어요. 서소문에서 남산길을 달려 올라가다가 숨이 차면 천천히 걸으면서 발성 연습을 했어요. 호흡이 거친 상태에서도 대사를 똑바로 발음하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단국대학 앞을 지나서 한남대교를 건널 즈음이면 온 몸이 땀에 흠뻑 젖는 거예요. 이때쯤이면 몸과 마음과 생각이 하나가 되어서 대사가 저절로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때의 경험은 해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정공법을 믿습니다. 요령을 믿지 않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서소문 호암아트홀에서 압구정동 집까지 7∼8킬로미터쯤 될까요? 하여간 집에 도착하면 새벽 1시 무렵이었으니 두 시간 정도를 걷고 뛴 셈이지요. 그렇게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열리고 정신이 맑아지는 체험을 하면서 저는 배우의 육체를 단련하는 법을 체득하게 된 것이지요.
1985년 호암아트홀 개관 기념 공연 <햄릿>에서 중인공 햄릿 역으로 출연한 유인촌.
사진은 <햄릿>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독백 장면
그렇다면 육체를 단련하듯이 배우는 만들어지는 존재인가요?
배우는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자기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배우의 숙명입니다. 지금 현재의 모습만을 보고서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연기의 길은 마라톤과 같이 긴 여정입니다.
배우의 길은 소의 발걸음과도 같습니다. 다른 학문처럼 정답이 없기 때문에 배우의 길은 우직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수도승과도 같아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자문자답해야 합니다. “나는 스스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자기계발에 투자하고 있는가?” “왜 하는가?” “무엇을 하는가?” “왜? 왜?”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대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배우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의 삶이자 생활입니다.
배우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요?
여기에서 우선 우리는 배우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배우는 자신이 가진 몸을 수단으로 삼아 다른 사람의 일생을 표현하는 직업이지요.
그렇지만 배우가 연기를 하는 최종 목적은 자아를 깨닫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배우의 연기 행위는 본질적으로 예술 행위이기 때문이지요.
배우는 단순히 다른 사람의 삶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분석하고 표현합니다. 연기가 예술로서 평가받기 위해서는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잘 드러나지 않는 것에 집착하고 스스럼없이 자신의 삶을 바쳐야 합니다. 마치 돌을 다듬는 석공의 심정으로 쉬지 않고 자신을 갈고 다듬어야 비로소 내가 아닌 다른 인간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좀 더 나아가 배역을 창출하고 몰입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요?
연기는 우선 모방에서 시작하여 표현하려는 대상에 몰입하게 됩니다. 이때 배역에 대한 철저하고 이성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원칙과 논리에 따라서 연기에 타당한 근거들을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하지만 몰입이 심하면 연기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약속이 깨집니다. 연기에서는 이성과 감성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교차되는 것이지요.
극 중 인물에 몰입하였다가 어느 순간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이성적인 역할을 요구받는 것이 연기입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출발하여 허구의 세계로, 다시 허구의 세계에서 현실세계로 걸어 나오는 것이 바로 연기인 것입니다.
연극 <홀스또메르>에서 주인공 말의 역을 맡아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톨스토이 원작의 초연작 <홀스또메르>,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던지는 연극
그렇다면 허구와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감각이 따로 존재하는가요?
모든 사람에게는 오감(五感)이 존재하지요. 하지만 배우에게는 오감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것을 육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육감이 가장 발달된 상태는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 있는 아가라고 합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엄마와 대화하고 감정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것도 본능적으로 육감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도 이와 같은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고 흰 종이와 같이 항상 맑고 순수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자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가면을 쓰기 시작합니다. 가면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지요. 배우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위선입니다.
연기론을 들으니까 마치 경건한 설교를 듣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제 곧 퇴임하실 텐데 역대 최장수 문화부 장관으로서의 소감은 어떠신지요?
쑥스럽지요. 근 3년인데도 일해 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금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벌여 놓은 일을 다 마무리 짓지 못 한 게 아쉽지만, 또한 공과가 있겠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다는 점, 그리고 최상의 결과를 내진 못했을지언정 최선을 다했다는 점만은 자신있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재직하시면서 잘했다라고 자부하실 만한 일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확정, 국립현대무용단 창단, 한글박물관 설립 추진 등은 눈에 보이는 성과지만,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에 애착이 컸습니다.
국립 예술단체를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실력있는 단체가 될 수 있게끔 토대를 닦았고, 엄격한 저작권 보호 정책으로 한국을 2년 연속 지적재산권 감시 대상국에서 제외시킨 것이나 중·고 축구의 학기 중 토너먼트를 폐지하고 지역 별 주말 리그제로 학교 체육 정상화를 이끈 일 등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다음 달 국립발레단이 울릉도에 가서 공연을 합니다. 이벤트가 아니에요. 문화예술 단체가 전국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 순회 공연을 하는 걸 체계화했습니다. 작은 마을 도서관까지 순회 사서를 파견했고, 전통 시장을 문화로 되살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문화예술 강사는 4,500여 명으로, 체육 강사는 1,300여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문화 그물망으로 문화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려 했습니다.
여러 배우들이 모여 만들어 나가는 연극은 완벽한 조화 즉 ‘앙상블’을 지향한다.
강원도 봉평 달빛극장 개관작으로서 우리 정서로 재해석한 김관 연출의 <리어왕>의 한 장면
퇴임 후 계획은?
부산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노린다느니, 중앙대 총장이 된다느니 나도 모르는 얘기를 외부에서 듣고 있어요. 모두가 사실무근입니다.
장관 될 때 중앙대에 사표 쓰고 나왔는데 무슨 총장인지. 솔직히 공연장에 가서 자원봉사하거나 시골 학교에서 예술 강사 하고 싶은데, ‘쇼 하네’란 소리 들을까 봐 그것도 께름칙하고.
당장 현장 돌아갔다간 문화부에서 부담 느낄 테고. 우선은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서 푹 쉬고 싶어요.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출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