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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원<열정과 집념어린 행동파 연극배우>

엑터타임즈 2026년 01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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忍苦. 아픔을 참고 견디지 않고는 삶의 참맛을 모릅니다. 종원이는 진솔하고 착합니다.

거짓을 모르는 그의 맑은 마음을 접한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에세이집 [형], 이건 연극이 아닐지도 몰라󰡕 중 전무송의 추천사

1950년 1월 27일생인 최종원은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태백공고를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하여 누나의 권유에 이끌려 서울예술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연극영화과를 수료하였다. 대학 졸업 후 연극에 매진하던 최종원은 1978년 연극 관람을 왔던 고영남 영화감독의 눈에 띄여 이후 영화에도 출연하게 되었으며, 1994년 최진실과 함께 찍은 <마누라 죽이기>는 영화배우로서 최종원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2년에는 보다 수준높은 연극을 만들고자 하여 정운봉, 이일섭 씨와 힘을 합쳐 ‘극발전연구회’를 만들어 우리나라 연극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일조를 하였다. 1983년 동아연극상 남자주연상을 수상하였으며, 1990년 서울연극제에서 개인연기상을, 1999년에는 KBS 연기대상 남자조연상을 수상하였다.
2001년 한국연극협회 제20대 이사장에 취임하였고, 2003년에는 문예진흥원 이사, 2006년에는 광주영화제 집행위원장, 2010년에는 한국예술산업진흥회 이사장을 각각 역임하였다.
최종원은 대학 강의를 통해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아, 백제예술대학 겸임교수, 경남대학교 초빙교수, 대구과학대학 방송연예학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최종원은 민주당의 강원도 태백·영월·정선·평창 지역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의정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이력을 검색하다 보니 에세이집도 내셨던데요?

연극으로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책에도 담았어요. 깊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주위에서 최종원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들 하더군요.

요즘을 검증 시대라고 하죠. 장관이나 국무총리를 임명할 때도 청문회가 있잖아요? 솔직한 표현이 사람답게 사는 법의 일환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내게 됐습니다.

책 제목이 란 제목인데 도대체 어떤 여자인가요?

김수희 씨의 ‘애모’라는 노래에서 따 왔어요.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여자를 만나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서 솔직하게 쓴 자전 에세이입니다.

접대부가 돼 다시 만난 어릴 때의 첫 사랑, 성병만 얻었던 매춘부와의 하룻밤, 결혼을 약속했지만 가난한 연극쟁이여서 헤어져야 했던 어느 여대생 등등의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썼습니다. 그리고 솔직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불만과 신랄한 세태 비평이 있습니다.

너무 솔직하셔서 애를 먹은 적은?

애를 먹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솔직히 사실을 말하는 것과 자기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는 건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이야 있었던 일을 숨기지 않고 나열하면 되지만, 복잡한 마음을 말이나 글로 표현할 땐 한계가 있다는 얘기죠.

요즘 대학로에서 가끔 벗기는 연극을 하는데, 그 관객들을 보면 너무 우스워요. 연극 시작 직전까지 출입구엔 아무도 없다가 극장 관계자가 나와 종을 치면서 “곧 시작합니다”하면, 이곳 저곳에 숨었던 사람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금세 자리를 꽉 메워요. 매 회 공연이 다 만원인데 그때마다 하나같이 똑같거든요. 우습죠. 좀 솔직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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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어왕> (왼쪽)과 <기막힌 사내들>

수많은 여자분들과의 교류 속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계기는?

제가 공연하고 있었던 <무희>라는 작품의 마지막 공연에 왔던 것이 계기가 되었죠. 제 후배이자 직장 동료 손에 이끌려 연극을 보러 왔었죠. 당시 아내는 법원 행정처 직원이었어요.

공연 후에 쫑파티를 하던 자리에서도 남아 있었는데 미소만 띤 채 다소곳이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늦은 술자리 끝에 연극패들과 함께 근처 여관에 가서 잠에 골아 떨어졌죠. 그런데 새벽녘에야 한 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죠.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친구 할까요”라고 했더니 “별로 그러고 싶지 않네요” 하면서 당차게 나오더라고요. 물러설 제가 아니죠. “그럼 연애합시다” 했더니 “그건 더욱 더 싫은데요” 하더군요. 출근을 위해 방을 나서는 그녀에게 기어코 다음에 만날 약속을 받고 말았어요.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후 주로 술집에서 데이트를 했던 것 같아요. 당시엔 몰랐는데 최근에 생각해보니까 술을 마시지 못했던 아내에게는 고역이었겠다 싶겠더라고요.

어떻게 결혼에 성공하셨는지?

어느 날 다른 때처럼 술집에서 나와 교문리 행 차를 태워 주려고 청계천 쪽으로 가는데 가로등 불빛에 그녀 얼굴이 반사되는 거예요. 너무나 예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녀 손을 잡고 골목길로 내달았습니다. 그리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키스를 했죠. 그게 첫 키스였어요.

저희는 주로 공연 연습장 근처 육교에서 만나곤 했습니다. 공연 연습을 마치고 나오면 밤 10시 30분 경, 교문리 행 막차가 끊길 시간입니다. 때문에 버스를 태워 주러 가는 동안만 얼굴을 보는 그런 식의 데이트였어요.

그러다 하루는 연습 시간이 길어졌어요. 약속 시간이 2시간 이상 흘러갔는데 ‘기다리다 그냥 갔겠지’ 하면서 육교 위를 올라가 보니, 어깨와 머리 위에 함박눈을 가득 이고 서 있는 그녀가 보였어요. 순간 “미안하다”는 나의 한 마디에 그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더군요. 순간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껴안으면서, ‘그래 이런 여자라면 평생을 함께 해도 될 거야’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인의 입에 오르기 시작한 건 바로 맥주 CF 때문이었죠?

박중훈과 <마누라 죽이기>, <투캅스>, <총잡이>, <남자는 괴로워>, <할렐루야> 등에 출연하면서 우연찮게 CF에 출연할 기회를 잡은 거죠. 김규환 감독의 특색은 대강의 콘셉만 말해 준 다음에 나머지는 모두 배우들에게 맡기는 타입이었어요. 우리가 콘티를 짜는 입장이 됐어요.

‘회오리 브라더스’가 돼 랄랄라 춤을 췄고, CF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죠. 지나가는 꼬마들도 알아보고, ‘랄랄라 최종원이다’ 할 정도가 됐으니까요.

대표작을 꼽는다면?

사극으로 <왕과 비>, <대왕세종>도 있고, 영화는 <영원한 제국>이라든가, 사극을 많이 했습니다. 또 코미디도 많이 했고요.

연극에서는 대체로 무거운 역을 많이 했어요. 파워풀 하고 서민을 대표하는 이런 역을 많이 했었는데 영화로 가면서 코미디를 시켜서 “참 무지하게 웃긴다. 좀 늙은 배우치고 저렇게 웃긴 사람 없다”고 해서 한참 잘 팔렸죠.

국회의원 출마 배경은?

우선은 유인촌 문화부장관 때문에 제가 고향에 심혈을 기울여 유치한 예술촌 사업이 백지화 되고 테마파크로 전환한데 대해서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그리고 이광재 강원도지사 직무 정지가 납득을 할 수가 없었고, 이러한 정국에서 제가 할 일이 있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표성을 갖고 있을 때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지 항상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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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유인촌 문화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는 최종원 의원

예술촌 사업은 오해라는 장관의 답변도 있었는데요?

정선군 고한읍에 삼척탄좌라는 게 있었는데 그게 폐광됐죠. 그래서 정선군하고 다 얘기했고, 강원도하고도 다 얘기했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다 설명했고, 다 OK 했는데, 장관이 직접 내려와서 봤을 때도 “정말 좋습니다. 잘 되길 바랍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차관 내려 보내고 국장 내려 보내고, 정선 군수 오라고 해서, “보고해라. 왜 하려고 하느냐?” 그래서 “우리 지역의 연극인이 하려고 그런다” 그러니까 “아니, 그 사람은 대학로에 수백 개 극장 있는데 그거 세우지, 산골까지 와서 하려고 그래요?” 이러고는 “예술촌은 수익성이 없다. 그러니까 테마파크 시켜라. 거기다가 와인바 집어 넣고 사우나, 찜질방 집어 넣어라” 이렇게 해서 갑자기 설계 변경에 들어갔죠.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사실은 어릴 때 정외과를 가고 싶었죠. 제가 태어난 곳이 탄광촌이고 광부들 노조 운동도 일찍 봐 왔고요. 저 보고 너무 성격이 직선적이고 톤이 강하다, 이런 얘기를 하지만 제가 살아온 배경 속에서 그런 성격이 구축이 된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연극을 하면서 배우협회 회장과 연극협회 이사장도 하면서 이것저것 많은 일을 했는데요, 내가 그 자리 맡았을 때는 정말 물불가리지 않고 연극인들을 위해서 일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3년 임기 동안 아파트도 한 채 팔아 먹었어요. 부모님 노후에 편히 사시라고 사 드린 아파트를 정리했죠.

임기 중 공약은?

많은 이들이 전지전능한 신인 양 국회의원에 당선만 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키지도 못할 약속들을 남발합니다. 저는 1년 8개월의 기간 동안 꼭 해 내고 싶고, 해낼 수 있는 실질적인 공약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추렸는데, 하나는 ‘폐특법(폐광지역개발지원에관한특별법) 연장’이고, 또 하나는 ‘문화예술 도시’입니다.

‘폐특법’의 경우 반드시 10년 이상 연장시켜 폐광 지역에 사는 태백, 영월, 정선, 삼척 주민들이 자립 자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문화예술’은 40년 연극인 생활의 전문성을 적극 활용할 생각입니다. 강원 18개 시·군에 이미 갖추어진 문화예술회관이나 기타 문화 공간을 이용하여 단순한 볼거리 제공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강원인의 희로애락을 공연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작은 건물까지도 문화 예술적이고 환경적으로 가꾸어 갈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언제부터 인연이 되셨나요?

노무현 대통령과는 경선 때부터 알게 됐어요. 저를 인사동에서 만나자고 해서 문화예술인들 몇이 만났는데 여사님도 같이 나오시고 거기에서 도와달라고 하세요. 그래서 “제가 강원도지사입니까?” “제가 힘이 있습니까?” “뭘 도와줍니까?”그랬죠. 그랬더니 그래도 “좀 도와달라”고 그러세요. 그래서 딱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죠. 만약 당선되시면 아직도 발전 못한 이 강원도 내 고향 좀 도와주시고, 그리고 폐광촌, 이건 좀 정책적으로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문화예술계, 특히 공연예술계는 또 정책적으로 도와주세요.”

이렇게 요구를 했더니 가만히 계시다가, “내가 만일 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하시더군요. 해서 제가 손잡고 “내려갑시다!”했어요. 경선에서 당선된 다음에 본선에서 또 도와달라고 하셔서 그래서 똑같은 조건 내걸었죠.

혹시 존경하는 정치인, 본받고 싶은 정치인이 있으세요?

이순재 선배님이 지역구를 갖고 계시면서 열심히 하셨는데…. 당신 스스로야, “나는 국회의원 체질에 안 맞더라” 그래서 포기하신 분이라고 하지만 배우로서나 사생활로서도 굉장히 높이 살만한 분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그런데 왜 고향을 떠나셨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둘째 형님이 29살에 광산에서 근무하시다가 돌아가셨죠. 탄광사고로. 정말 고학하다시피 한양대학교 공대 졸업하시고…. 이래 가지고 제일 먼저 대장자리라는 걸 하셨는데 장가갈 나이에 돌아가신 겁니다.

그 형이, “내가 너 만큼은 대학 보낸다. 너 공부해” 항상 얘기하셨어요. 근데 그런 형님의 죽음이 충격이었던 거죠. 저렇게 열심히 정직하게 사신 분이 이렇게 가셨는데, 대체 뭐가 옳은 인생인가 싶더라고요.

형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40일 넘는 시간 동안 학교를 안 갔죠. 뒷산에 가서 묘에 가서 드러누워 있고. 담임 선생님도 “야, 일주일만 더 있다 나와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다 ‘난 공고 광산과니까 뭐 힘나는 데까지 도끼 들고 삽질하고 하다가 월급 좀 받아먹고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하고 애 생기면 살고 죽는 게 인생이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땐 결석이 전교에서 두 번째로 많았어요. 방학 빼고 순수 결석이 72일, 이렇게 됐으니까. 그때부터 좀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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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삶의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 그라 의협심은 남다르다는 소문

그러면 졸업하고 바로 탄광으로 가셨나요?

네. 탄광에 들어가니 까까머리가 그 광부 어른들 하고 매일 술 먹고 그리고 또 지나가다 보면 젊은애들이 여자랑 지나가는 걸 못 봐 줬으니까, 그럼 또 불러서 해코지 하고 패기도 하고 이러면서 겁주고.

 

거의 건달 수준이셨네요?

그렇진 않고요. 그래서 노상 그러고 1년 동안을 쌈박질하고 그러니까 하루는 아버지가 부르세요. 저는 아버지한테 한 대도 맞은 적이 없어요. 그런 분인데 저한테…. “얘, 너 있지. 너 죽어라…” 그러세요. 그래서 속으로는 ‘아니, 왜 죽으라는 거야. 뭐 부모가 이래’ 그래서 내가 가만히 있었더니, “죽더라도 나가 죽어라…” 그러세요. 그 말씀에 며칠 또 방황했죠. 그러다가 이게 아니구나 싶어서, 며칠 고민 끝에 떠나기로 한 겁니다.

서울로 가자?

아버지도 나가 죽으라고 하시니 떠나자. 그 때 서울에서 누나가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다녔어요.

그 누나도 대학 등록금 없어서 간호사로 돈 모아 가지고 늦게 대학을 들어갔는데 그렇게 해서 하숙을 하게 됐죠. 그러다가 대학 가겠다고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코피도 흘렸어요. 그럴 땐 아주 희열을 느끼고 이제 드디어 공부가 좀 되나 싶었죠.

그때는 정말 열심히 하셨겠네요?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워낙 밑바닥이 약해 가지고요, 2년 동안 계속 대학에 낙방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또 방황하고…. 도저히 못 살겠더라고요.

또 서울에서 사귀는 친구들과 대화가 안 통했어요. 그 친구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살아온 곳, 탄광촌에서의 인생에 비하면 잘 이해가 안 갔죠. 내 고향에서 너희들이 아픔으로 느끼는 그건 ‘이 자식아! 일상생활이야…’ 이렇게 생각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기쁨보다는 슬픔부터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서울 애들하고 접근이 안 되더라구요.

다시 고향에 가겠다?

그러니까 누나가 “야, 우리 술 한 잔 할래?” 그래요. 그래서 둘이 사홉 들이 한 병을 딱 갖다 놓고 먹다가 모자라서 사홉 들이 한 병을 더 가지고 왔죠. 그때 누나도 참 잘 먹었어요.

둘이 적어도 두 살 차이인데 둘이 사홉들이 한 병씩을 딱 까는데 누나가.

“야, 너 연극 안 해 볼래?” 그래요. “앞으로 우리 시대는 개성의 시대가 될 거니까 너 연극 안 해 볼래?” 그러더라고요. 물론 전엔 생각도 해 본 적 없었죠.

누님이 소질을 알아보신 겁니까?

그래서 입학원서를 사왔어요. 서울예술대학. 그래서 제가 “누나는 4년제 다니고 나는 2년 다니란 얘기냐?” 했더니 “연극은 여기가 제일 좋다”고 그러세요. 그런데 그 날 저녁에 또 누나랑 싸우고 원서를 찢어버렸어요. 그런데 다음에 누나가 또 원서를 사와서 넣은 거죠. 누나의 말 가운데 ‘개성의 시대란 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그거 묘한 말이네….’

이렇게 생각하면서 방향을 튼 게 제 인생이 된 거죠.

그리고 가서 배워 보시고 조금 해 보시니까 ‘아, 이게 천직이겠다’ 그런 느낌 오셨어요?

해 보니까 ‘야, 체질에 맞구나. 땅바닥 뒹굴고 막 텀블링하고 막 하는 게 날 던질 수 있는 작업이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심취해 들어갔죠. 그래서 오직 내 인생은 이것밖에 없다. 그러면서 결혼도 했고 나중에는 군대 갔다 오고….

제대하는 날 선배들 연극하는데 찾아가서 “우리가 할 일 없습니까?”하고 물어서 전단지 3만 장을 돌리고 라면 값 받아서 종로 광화문 지하도에 가서 사 먹고 그랬어요.

[극발전연구회]라는 단체도 만드셨지요?

방향 감각 없이 휘청거리기만 하는 대학로의 연극인들 중에서 저도 이제 연극 전반에 대해서 책임질 나이가 되었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유독 벗는 연극이 많아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지만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브로드웨이를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려 보니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때 마침 전무송 형이 TV 촬영 차 미국에 다녀와서 어느 날, 형과 술집에 마주 앉아 있다가 쌓였던 울분이 폭발을 하게 된 것이죠. 우리의 작은 힘으로는 바위에 달걀 치는 격이었지만 새로운 창작 연극을 위해서 뭔가 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운봉 씨와 이일섭 씨가 가세해서 조직한 것이 [극발전연구회]였어요.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이강백 희곡인 <북어대가리>였는데, 평단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관객들도 많이 들어서 그야말로 흥행과 예술성을 다 건진 작품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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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발전연구회] 창립을 기념으로 올린 연극 <북어 대가리>의 한 장면

술을 매우 사랑하시는 것 같은데, 술친구로는 어떤 분이?

눈보라가 심하게 휘날리던 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에 누가 현관문을 두드려요. 나가보니깐 윤승원과 정승호예요. 이들은 이미 만취가 되어서 한 잔 더하려고 우리 집을 찾은 거지요. 아내한텐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럴 만큼 저희들은 흉허물이 없습니다.

윤승원과는 1984년 동방레퍼토리에서 공연했던 <리어왕>에 함께 출연하면서 어울리기 시작했죠.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통이 커서 사나이다운 기질이 다분한 친구지요. 정승호는 품바로도 유명한데 요새는 TV 무대를 주름잡고 있더군요. 화끈하고 남자다운 성격이죠. 이 셋과는 죽이 척척 맞아서 함께 어울려 잘 다닙니다. 하지만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술 삼총사에요.(웃음)

‘집밖의 마누라’도 한 분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그리고 정말 좋은 친구는 윤여성이예요. 제가 ‘집밖의 마누라’라고 하죠. 서울연기자 그룹 시절부터 연극인들의 권익을 위해서 손발을 맞춰 왔던 후배지요.

1982년 광장에서 공연을 하려고 극단 사무실에서 만났는데 웬 잘 생긴 청년 하나가 있는 거예요. 여성이는 <아가씨와 건달들> 주인공을 거치면서 대학로에서는 꽤 인기 있는 멋진 배우였죠. 그렇게 만나게 되었는데 서울연기자 그룹을 만들면서 더 친해졌죠. 저는 회장이었고 여성이는 총무였는데, 저의 돌파력과 추진력, 그리고 여성이의 섬세함과 유연성이 어우러져서 지금의 연기자 그룹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공연이 끝나고 여성이가 다짜고짜 술집으로 데려가요. 그리고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예쁜 포장지에 싼 조그만 물건을 꺼내면서 ‘축하한다’고 해요.

“축하는 뭔 축하?”했더니, “오늘이 형 생일이잖아” 그러잖아요? 그만큼 세심하게 저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고마운 거죠.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저질 연극 단체를 향해서 테러단을 만들까 구상도 했었고, 아직까지도 연극인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여성이는 ‘저의 집 밖의 마누라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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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사내들>에서 좌로부터 심부름꾼 최진호와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동료 티처인 윤여성과 함께

그 밖에도 선생님을 따르는 많은 벗들이 있지요?

1992년에 인공기 사건으로 유명해진 연극 <격정만리>를 하면서 친해진 김명곤, 이 친구는 속정이 많은 친구지요. 그리고 박중훈은 언제나 쾌활하고 즐거워요. 언젠가 중훈이와 <총잡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의 일인데, 강도를 맡았던 제가 상대 역이었던 중훈이의 뒤통수를 때리는 장면에서 사실 저도 맞는 역할을 많이 해 보았던 터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타격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동작은 크게 하되 때리는 순간은 손목 힘을 줄이려고 애를 쓰면서 뒤통수를 쳤어요.

그랬더니 그 장면 촬영이 끝나자 중훈이가 불만스러운 듯 애기를 꺼내더군요. “이러지 마세요. 정말로 때려 주세요” 저는 맞는 이의 아픔을 잘 알고 있느지라 “정말로 때려도 괜찮겠냐? 꽤 아플텐데”하고 중훈이에게 한 번 더 마음을 떠보았지요. “예술인데요,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중훈이의 태도는 단호했어요.

다시 필름이 돌아가고 저는 그저 연기에만 몰두했어요. ‘퍽’ 단발음이 들렸고 손바닥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으로 보아 만만치 않은 타격임을 짐작할 수 있었죠. 촬영이 끝나고 중훈이는 뒤통수를 쓸어내리며 신음까지 토해 내면서 내뱉더라고요. “아휴, 눈알 튀어나올 뻔했어요” 그렇게 해서 친해진 인연이죠.

그리고 정말 잊을 수 없는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된 최진실입니다. <마누라 죽이기>에서 친해 졌는데, 이 작품에서는 제가 아픔을 많이 당했지요. 주방에서 킬러인 내가 진실이를 쫓고, 그녀는 내게 배추를 던지면서 저항을 하는 장면인데, 정말 원 없이 배추에 맞아 봤습니다. 배추는 그런 대로 퍼져서 견딜 만한데 팔뚝 만한 조선무의 타격은 상상을 초월한 통증이었어요.

천부적으로 타고난 자질에다가 연기에 대한 집요함까지 갖춘 배우인데 고인이 되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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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익 연극인의 역사를 그린 <격정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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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진실과 함께 찍은 영화 <마누라 죽이기>에서 킬러로 변신한 모습

연극배우 최종원으로 불리시기를 원하시던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를 영화나 TV의 조연 배우 최종원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연극배우 최종원으로 불리기를 원합니다.

제가 TV를 시작하게 된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어요. 딸내미가 대학을 들어갔는데 “대학 등록금이 얼마나 하냐?” 했더니 딸이 “한 300 할 걸” 그래요. 그 300에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해서, 텔레비젼을 하게 됐죠.

영화 연기와 연극 연기의 차이점, 그리고 연극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영화는 신(scene)단위로 촬영을 합니다. 같은 장소라면 사건의 순서와는 관계없이 장소에 필요한 장면들을 몰아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아요. 두 연인이 서로 사랑을 하는 장면을 찍다가 배신한 애인에게 복수하는 장면이 뒤를 잇기도 하고 다시 연애 시절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연기가 단절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배우고 무대 위에서 자라온 저로서는 짧은 호흡의 영화에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감정이 고조되는 과정 없이 순간의 샷트(shot) 속에 급조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저에게는 몹시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연극은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것도 좋지만 연습 과정 속에서 싹트는 우정과 에피소드들이 있어서 더 좋습니다. 연극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가 있거든요. 과정에 얼마 만큼 충실했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완성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연극을 과정의 예술이라고도 합니다.

무대 위에서 나의 호흡을 갖고 상대 연기자와 호흡을 맞추고 더욱이 관객들과 직접 어우러지는 살아 숨 쉬는 연극이야말로 세상 그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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