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입력해주세요_-001
  • 홈
  • About Us
  • 배우 인터뷰
  • 공연소식
  • 오디션 모집
  • 지원사업
  • 일자리
  • 캐스팅
  • My 프로필
    • My 소속 그룹
  • 로그인 | 로그아웃
  • 로그인
메뉴
  • 홈
  • About Us
  • 배우 인터뷰
  • 공연소식
  • 오디션 모집
  • 지원사업
  • 일자리
  • 캐스팅
  • My 프로필
    • My 소속 그룹
  • 로그인 | 로그아웃
  • 로그인
검색:

Login

Logout

  • 홈
  • About Us
  • 인터뷰
  • 공연소식
  • 오디션 모집
  • 지원사업
  • 캐스팅
메뉴
  • 홈
  • About Us
  • 인터뷰
  • 공연소식
  • 오디션 모집
  • 지원사업
  • 캐스팅
검색:

Login

Logout

콘텐츠로 바로가기
  • 인터뷰

김명곤<세상과 소통하는 문화 광대(廣大)>

엑터타임즈 2026년 01월 02일
68

간혹 그의 블로그를 링크시켜 놓고 들어가서 읽을 때가 있다. ‘김명곤의 세상 이야기’라는 블로그인데, 전통문화에 대해서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업데이트도 금방 되는 편이어서 주인장의 부지런함을 느끼게 한다. 거기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글이 반긴다. “우리 몸에 없어서 안 되는 귀한 것은 소금, 소금보다 더 귀한 것은 황금, 황금보다 더 귀한 것은? 지금!”

1952년 12월 3일 생인 김명곤은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얻은 학구파 연기자이다. 대학 시절 우연히 판소리를 배우는 댕기머리 소녀들을 보고 판소리에 관심을 가지다가 1년 후에 박초월 선생을 사사하여 정식으로 판소리를 배웠다. 그리고 역시 대학 시절 우연히 결원이 생긴 연극에 대타로 한번 나섰다가 그의 연기력을 인정받아 이후 연극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김명곤은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고 대표를 맡았으며, 우석대학교 연극영화과 전임강사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객원교수를 거쳐 국립중앙극장 극장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2006년도부터 1년 2개월에 걸쳐 제8대 문화광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1992년 제1회 어린이연극제에서 연출상과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으며, 1993년에는 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에 개봉된 영화 <토지>에서 주연을 맡아 열연한 그는 이 영화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누리기도 하였다.

현재 전주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계시지요?

현재 전주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계시지요?

작년(2009년)에 임명되었으니 벌써 이 년째네요. 처음엔 선뜻 수락하기가 어려웠어요. 계속 공직에 있다가 또 다른 일을 맡기가 조심스러웠던 거죠. 하지만 고향인 전주에서 제가 사랑하는 ‘소리’라는 장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위원장직을 받아들였습니다.

성공적인 축제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올해 10회째를 맞는 전주세계소리축제는 그동안의 정체성 등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겨났고 조직의 역량이 강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소리축제의 방향성은?

소리의 예술성을 보존하는 데에는 다들 이견이 없지만 대중성을 함께 추구하는 데 대해서는 일각에서 여전히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가운데 대중성과 예술성을 적정한 수준에서 조화시키는 것이 조직위원회가 해야 할 몫이죠. 일단 새로운 것이나 파격적인 것을 구상하기보다는 내실을 튼실하게 다지겠습니다.

그동안 축제가 열흘 동안 열렸는데 좀 길었다는 느낌이어서 올해부터는 축제 기간을 줄이고 압축적으로 공연을 배치할 것입니다. 홍보 강화를 위해서 서울에 소리축제 사무실도 열 예정이고 당장 자문·연구위원회를 구성해서 프로그램에 대한 견해를 들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주세계소리축제를 한국을 넘어서는 글로벌 축제로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큰 축제 조직이라 문제점들이 일시에 개선되지는 않겠지만 차차 내실 있는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약속드리면서 적극적인 관심 또한 부탁드립니다.

늦게 소리에 입문한 걸로 아는데 언제부터 배우기 시작했나요?

대학교 3학년 방학 때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가 국악원에 판소리를 배우러 간다기에 따라갔어요. 구경 갔다가 완전히 반해 버리고 말았어요.

그 때까지만 해도 오페라 아리아, 이태리 민요 등 주로 클래식을 좋아하고 팝송을 좋아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어요. 비지스, 엘비스 프레슬리, 송창식, 윤형주 씨 등 한참 대학가에는 통기타가 유행할 때였어요. 청바지에 통기타에 장발이 유행했었는데 판소리를 듣고서 세상에 이런 노래가 있었는데 왜 한 번도 학교에서도 배워보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 했는가 충격을 받고 빠져 들었어요.

그래서 언제쯤 정식으로 배워볼까 기회를 보다가 1년 뒤 졸업반 때 길을 가다가 옆에 보니까 박초월 국악학원이라는 간판이 있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들어가서 배우겠다고 했더니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셨는데 그게 인연이 돼서 10년 간을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자로 있게 된 거죠.

당시 서울대생이셨죠?

예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학생이었습니다. 그때는 서울대학교 학생이 창을 배우러 왔다는 게 선생님이나 학원생들한테는 신기했나 봐요. 대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판소리를 한 여자 학생들이었고 학원에는 남자라고는 저 하나밖에 없을 정도였어요. 더군다나 서울대라고 하니까 선생님이 첫 달 수업료만 받고 그 다음부터 “자네는 공짜로 다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박초월 선생님 아드님이 있었는데 중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니까 집으로 들어와서 공부 좀 가르쳐 달라고 하셔서 저는 입주 가정교사를 하고 선생님은 저한테 판소리를 가르쳐 주시고 그러면서 점점 가족처럼 생활하게 된 거예요.

아무리 전통에 대한 관심은 있어도 책이나 답사 같은 것은 몰라도 어떻게 직접 소리를 배울 생각을 하셨는지요?

아버님도 오페라를 좋아하시고 누님들도 교회 성가대를 하시고 저도 클래식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어느 날, 김제에 있는 한 국악원인데 느티나무가 있는 정자에서 하얀 모시한복을 입은 여자 선생님이 댕기머리를 딴 어린 소녀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이게 무슨 영화에나 나오는 장면 같기도 하고 댕기머리를 딴 소녀들도 신기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래가 가슴에 와 닿았어요. 뭔가 인연이 닿았던 것 같아요.

그 때 구경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서 판소리 레코드를 사서 혼자서 들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 들었어요. 그래서 책도 사서 읽어보고 하다가 1년 뒤에 정식으로 배우게 된 거죠. 그러니까 1년 동안은 판소리를 혼자서 짝사랑을 한 거예요.

소리를 직접 배워보시니까 어떻던가요?

클래식을 좋아할 때도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산에 올라가서 발성도 하고 노래도 했었어요. 미친놈 소리 들으면서 혼자 그렇게 했었죠. 제가 판소리를 처음 배우러 갔을 때 판소리를 하니까 다들 깔깔거리면서 웃는 거예요.

우리 선생님도 웃으시면서 “이 사람은 판소리를 소프라노로 하는구먼” 하시더라고요. 제가 벨칸토 창법으로 판소리를 한 거예요. 나중에 선생님과 함께 살면서 산에 가서 목을 풀고 기본적인 발성법부터 다시 했어요.

연기도 하시고 잡지사 기자도 하셨고 여고 독어교사로도 계셨지요?

대학교 2학년 때 서울사대 연극반에 우연히 놀러갔다가 배우가 하나 안 나오니까 연출하던 선배가 대본 좀 읽으라고 해서 읽었더니 내일부터 계속 나오래요. 그래서 연극반이 되었어요. 그랬다가 그 사람이 아예 안 나오는 바람에 제가 그 역을 했는데 그 전까지는 문학을 했었어요. 소설가나 작가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연극을 하면서 완전히 바뀌고 판소리를 하면서 또 바뀌고, 그래서 졸업하고 나서 일단 취직을 하고 생활을 해야 되겠어서 잡지사 기자를 했는데, 연극하고 싶어서 미치겠는 거예요. 그래서 교사로 1년 뒤에 옮겼는데 훌륭한 선생님이 되려고 간 게 아니고 방학 때 연극하려고 간 거예요.

1년 동안 그렇게 하니까 이제는 방학 때만 해서는 성이 안 차요. 그래서 다 그만두고 연극만 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결단을 한 거죠.

noname01-64

사범대 연극반에서 올린 막스 프리쉬의 <안도라>의 한 장면

noname01-65

배화여고 시절 교사극단인 [상황]에서 <뻐꾹 뻑 뻐꾹>에서, 연출은 이재오씨다.

극단 [상황]의 대표는 지금 특임장관으로 있는 이재오, 당시는 필명으로 李民이라는 이름을 썼음

한때는 건강이 좋지 않았지요?

대학교 2학년 때 연극한다고 너무 무리하게 몸을 혹사하는 바람에 그 때 결핵에 걸렸어요. 그런데 제때 치료를 못 해서 결핵과 십 몇 년을 함께 살았어요. 그 결핵이 있는 상태에서 연극도 하고 판소리도 하고 영화도 하고 그렇게 살다가 88년도에 치료가 완치되었어요. 결혼하고 2년 뒤였죠.

결혼하기 전까지는 십 몇 년을 혼자 떠도니까 치료가 잘 안 되었는데 결혼하고 2년 동안 집중적으로 집사람과 함께 투병을 했죠. 집사람은 저하고 결혼한 게 아니고 거의 환자하고 결혼한 셈이에요.

연극은 가난하다는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요?

연극에서 출연료를 받는다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어요. 주면 받지만 안 주면 안 받는 거죠. 돈벌이와는 관계가 없는 직업인데, 우리 부모님은 왜 그런 걸 하느냐고 한 마디도 하신 적이 없으셨어요. 그만큼 저를 지지해 주셨어요. 아버님께서는 제가 얼마나 연극을 좋아하고 판소리를 좋아하고 예술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제 일기를 몰래 보셔 가지고 다 알고 계셨어요. 이놈이 언젠가는 그만둘 거다 짐작하고 계셨던 거죠.

그리고 아버님의 철학이 ‘젊을 때 남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주의셨어요. 하지만 사실은 집안에서 가장 노릇을 했어야 하니까 집안 입장에서는 힘들었죠.

집안이 어려웠지만 부모님께 무슨 일이 있어도 생활은 할 테니까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켜 드리고 연극을 시작했는데 그 뒤부터 고난의 길이 시작된 거예요. 장남으로서 부모님을 잘 받들지 못한 게 지금도 가슴에 맺혀 있어요.

부모님은 원망 한 마디도 안 하시고 제가 연극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시다가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셨어요. 나이 들어서 병이 드시고 돈이 필요할 때 제가 돈이 없다 보니까 병간호라든지 입원 등을 제때 못해 드려서 조금 일찍 돌아가셨어요.

서편제가 대박을 터뜨렸을 때 부모님이 이 영화를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이미 그때는 우리 부모님, 박초월 선생님이 모두 돌아가셨을 때에요.

거의 고아처럼 떠돌다가 결혼했는데 그 때 친척들, 주변 사람들이 전부 “어머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아버님이 살아계셨더라면…”, “박초월 선생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극장장이 되었을 때도 그랬고 장관이 되었을 때는 더 그랬죠.

아쉬워하고 그랬지만 그럴 때마다 부모님 산소에 가서 절하고 오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어요.

223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224

문화부 재직 시절 매주 수요일을

한복 입는 날로 정하기도 했다

연극계에 있다가 장관이 되셨는데요?

우리나라는 그런 예가 드물지만 외국에서는 배우나 연출자들이 연극을 하다가 행정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극단 󰡔아리랑󰡕에서 대표로 있으면서 경영 경험도 많이 했어요. 극단에서는 기획, 제작, 연출, 출연, 작가를 비롯해서 공연과 관련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봤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는 자신이 있었고 또 일을 해 보니까 극단 꾸려나가는 것보다 더 쉽더라고요. 극단은 돈도 없죠, 조직도 없죠, 여건이 너무 열악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일을 해왔는데 여기는 예산 풍부하지, 최고의 전문가들이 꽉 차있으니까요.

그 사람들과 어떻게 화합해서 일하느냐, 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느냐, 이런 것을 열심히 하다가 보니까 매년 평가를 받아서 연봉이 정해지는데 매년 우수한 평가를 받았어요. 그렇게 6년이 지나니까 연봉이 자꾸 뛰어가지고 최고 연봉 국무위원이 된 거죠.

noname01-66

연우무대 <나의 살던 고향은>에서,  깃발 들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김명곤

취임사 때 말씀하신 광대정신(廣大精神)이란 무슨 뜻인가요?

제가 장관이 되고 나서 직원들에게 첫 취임사를 할 때 광대 정신으로 문화 행정을 하자고 했고 1년이 지난 뒤에 신년사에서는 열정과 신명으로 문화 행정을 하자고 했어요.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데 제가 생각하는 광대라는 것은 ‘어릿광대처럼 남을 웃기고 즐겁게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야말로 한자 뜻대로 넓을 광(廣), 큰 대(大), ‘넓고 큰 영혼을 가지고 창조를 해 내는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열정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고, 이 열정을 여러 사람들을 신명나게 하는 데 쓰자, 우리도 신이 나서 일을 하고 우리 국민들이 신나게 하는 데 몸 바치자는 거였습니다.

noname01-67

이장호 감독과 같이 한 영화 <바보선언>에서 이보희와

장관으로 일하면서 심혈을 기울이셨던 분야는?

전통문화 육성이랄까 ‘6H 브랜드’(한글, 한복, 한옥, 한지, 한식, 한국음악)를 만들어서 한 스타일(han-style)을 육성하려 노력했습니다. 꼭 우리 전통문화이니까 기르자는 의미보다는 정말 우수한 거거든요. 한글도 그렇고 한옥, 한식, 한지, 한국음악이라든지 이것들이 정말로 보석처럼 빛나는 것들인데 너무 그동안 무시하고 문화상품으로 길러내지 못했어요. 시대가 변하면서 이것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어서 우선 문화관광부에서만이라도 관심을 갖고 산업화시키고 세계화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자고 생각해서 강조하고 사업을 여러 번 벌였습니다.

앞으로도 이것은 문화관광부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가, 국민들 모두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더군다나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한류를 통해서 영화나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음식도 좋아하고 한국 옷도 입어보고 싶어 하고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 하잖아요.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일들은?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영화·뮤지컬·연극 대본들을 추슬러 다듬을 예정입니다. 8년 전에 중단했던 남사당패 이야기에 대한 대본 작업도 해야 하고 조선말 왕실 궁녀와 프랑스 외교관의 사랑이야기도 뮤지컬로 마무리 지어야죠.

또 20세 중국 여성이 몽골 사막에 20년 동안 나무를 심어 방풍림을 조성하고 중국 식수 영웅이 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은데…. 제가 너무 구체적으로 말하네요.

noname01-68

1991년 서울연극제에서 참가한 <격정만리>, 이 작품은 좌우익 연극인들의 역사를 다룬 작품으로 김명곤이 쓰고 조항용이 연출했다

noname01-69

영화<서편제>에서 송화의(오정해) 아버지로 나온 유봉이(김명곤)

후학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연극을 하겠다고 처음에 뛰어들었을 때는 누구나 순수한 열정과 꿈이 있잖아요. 자기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창조의 열정이 있겠죠. 연기를 하든 글을 쓰든 연출을 하든, 그것을 잊지 말고 자기 삶의 정신으로 잘 채워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살다 보면 어느 새 퇴색되고 변질되고 잊어버리는 순간이 너무나 많아요.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돈벌이 때문에 억지로 해야 하는 일도 있고, 이러면서 점점 열정이 식어가고 그러다 보면 광대로서도 죽어가는 거죠. 그것을 잊지 말고 죽을 때까지 열정을 가지고 살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게시물 내비게이션

이전: 김유경, ‘1인극인데 두 명이 나오는 이유에 대하여’로 제3회 서울희곡상 수상
다음: 김성녀<영혼을 정화시키는 배우>

관련 소식

106
  • 인터뷰

김지숙<셰익스피어는 그녀를 자유라 불렀다>

엑터타임즈 2026년 01월 27일 0
96
  • 인터뷰

김갑수<지금은 김갑수 시대>

엑터타임즈 2026년 01월 26일 0
noname01-86
  • 인터뷰

유인촌 <평범과 비범이 공존하는 한국형 햄릿>

엑터타임즈 2026년 01월 19일 0

공연 소식

Screenshot_20260114_140359_KakaoTalk
  • 공연리뷰

‘Until the Day’에 이은 통일 연극의 결정판 – 댄스컬 〈통일 리허설〉 리뷰

엑터타임즈 2026년 02월 02일 0
‘Until the Day’에 이은 통일 연극의 결정판 – 댄스컬 〈통일 리허설〉 리뷰 김은균 편집장  통일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인가...
더 보기 ‘Until the Day’에 이은 통일 연극의 결정판 – 댄스컬 〈통일 리허설〉 리뷰에 대해 더 읽어보기
2026년을 열어제치는 공연예술계의 신호탄 – 창작산실 드디어 시작하다 Screenshot_20260119_103523
  • 공연소식

2026년을 열어제치는 공연예술계의 신호탄 – 창작산실 드디어 시작하다

2026년 02월 02일 0
창작산실, 오늘의 무대가 되다 – 창작오페라 〈2·28〉이 불러오는 민주주의의 첫 목소리 1768449008232
  • 공연 프리뷰

창작산실, 오늘의 무대가 되다 – 창작오페라 〈2·28〉이 불러오는 민주주의의 첫 목소리

2026년 01월 29일 0
불의한 세상 한가운데서 행동하는 신앙을 묻다 국제성경연극선교단 제4회 정기공연 전율의 잔 Screenshot_20260119_110330_KakaoTalk
  • 공연리뷰

불의한 세상 한가운데서 행동하는 신앙을 묻다 국제성경연극선교단 제4회 정기공연 전율의 잔

2026년 01월 29일 0
사랑과 죽음, 신화의 언어로 노래하다 – 창작오페라 〈찬드라〉, 그리고 그 울림을 완성하는 더뮤즈오페라단 Screenshot_20260114_140951_Messages
  • 공연 프리뷰

사랑과 죽음, 신화의 언어로 노래하다 – 창작오페라 〈찬드라〉, 그리고 그 울림을 완성하는 더뮤즈오페라단

2026년 01월 16일 0

배우 인터뷰

김지숙<셰익스피어는 그녀를 자유라 불렀다> 106
  • 인터뷰

김지숙<셰익스피어는 그녀를 자유라 불렀다>

2026년 01월 27일 0
김갑수<지금은 김갑수 시대> 96
  • 인터뷰

김갑수<지금은 김갑수 시대>

2026년 01월 26일 0
유인촌 <평범과 비범이 공존하는 한국형 햄릿> noname01-86
  • 인터뷰

유인촌 <평범과 비범이 공존하는 한국형 햄릿>

2026년 01월 19일 0
강태기<연극의 힘을 믿고 사는 낭만주의자> 101
  • 인터뷰

강태기<연극의 힘을 믿고 사는 낭만주의자>

2026년 01월 07일 0
장두이<생을 노래하는 방랑자> 87
  • 인터뷰

장두이<생을 노래하는 방랑자>

2026년 01월 07일 0
최종원<열정과 집념어린 행동파 연극배우> 80
  • 인터뷰

최종원<열정과 집념어린 행동파 연극배우>

2026년 01월 06일 0
actortimes-logo-white-footer

엑터타임즈(ActorTimes)는 국내 공연 문화를 선도하는 배우와 공연 예술 전문 웹사이트입니다.

  • ahhaa37@hanmail.net
Facebook-f Twitter Youtube

개인정보처리방침

이용약관

공연 리뷰

Screenshot_20260114_140359_KakaoTalk
  • 공연리뷰

‘Until the Day’에 이은 통일 연극의 결정판 – 댄스컬 〈통일 리허설〉 리뷰

2026년 02월 02일
Screenshot_20260119_110330_KakaoTalk
  • 공연리뷰

불의한 세상 한가운데서 행동하는 신앙을 묻다 국제성경연극선교단 제4회 정기공연 전율의 잔

2026년 01월 29일

공연 소식

Screenshot_20260119_103523
  • 공연소식

2026년을 열어제치는 공연예술계의 신호탄 – 창작산실 드디어 시작하다

2026년 02월 02일
Screenshot_20260114_140359_KakaoTalk
  • 공연소식

통일은 완성이 아니라, 연습이다 – 댄스드라마 〈통일 리허설〉, 대학로에서 초연

2026년 01월 16일
Copyright © 2026 엑터타임즈(ActorTimes) | Powered by 엑터타임즈(Actor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