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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근<내일 날이 밝으면>

엑터타임즈 2025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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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2일부터 강남의 한 극장에서는 82살 된 한 노인이 모노드라마를 하고 있었다. 작품은 <내일 날이 밝으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다 감옥에 갇혀 내일 날이 밝으면 사형을 기다리는 한 혁명투사처럼 그는 절박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90분 간 혼신의 연기에 기력이 쇠했던 것일까. 박수가 한참 이어진 후에야 커튼콜에 화답한 그는, 객석으로 내려와서 감회에 젖은 듯 말했다. “ 「무대의 아름다움에 얻어맞는 나」 이 양동군이 30여 년 동안 무대를 멀리하고 살다가, 여러분의 도움으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올해 제가 82세인데 죽는 날까지 단 5년, 10년이라도 계속 연기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잘못해서 미안합니다. 다음에는 더 잘하겠습니다.”

1929년 만주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난 양동군은 의사인 아버지와 자애로우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윤동주, 문익환, 안병욱 등과 함께 만주에서 수학하였고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였다. 1950년 이태리 정부초청 장학생으로 이태리 국립 영화학교 연출과를 졸업했으며 동양인 최초로 예일대학교 대학원 드라마스쿨에 합격을 하였으나 적성국가라 연좌제에 의해서 입학이 좌절되었다. 1960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와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영문학의 거두 이팔범 교수와 더불어 불어, 이태리어 동시통역을 도맡아 한국동시통역의 제 1세대로 활약하였으며 영어를 비롯하여 이태리, 불어, 독어, 중국어, 일어, 러시어에 이르기 까지 8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의 마술사이기도 하다. 제자로는 최불암, 태현실, 노주현, 임현식, 임하룡, 장용 등의 제자를 길러 냈으며 현재는 외국어대학교 교양학부과정에 최고령 강사로서 정력적으로 강의하고 있다. 2010년 3월 <내일 날이 밝으면>이라는 모노드라마를 공연함으로써 최고령 모노드라마 공연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82세에 모노드라마를 하시게 되었는데요?

30여년 만에 무대에 섰습니다. 혼자서 무대에 올라 연기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오늘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기쁩니다. 지금은 목 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이지만 다음 공연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대가 단촐합니다.

감옥을 상징하는 철창이 있고 구원의 빛줄기 같은 조그만 창문하나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하나, 침대가 하나 놓여있을 뿐이죠. 테이블 위에 조그마한 촛불이 사형을 기다리는 마지막 날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생명력을 가진 촛불이 흔들거리면서 이 적막한 공간을 밝혀주죠.

이 극장에서 다른 연극이 공연되고 있기 때문에 월요일을 이용해서 작품을 올리고 있습니다. 3월 22일부터 시작해서 4월 26일까지 두 달에 걸쳐서 여섯 번 공연을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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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드라마 <내일 날이 밝으면> 공연 포스터

이번 작품에 나오는 이반 가가노비치는 어떤 인물인가요?

이반 가가노비치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이상을 위해 수많은 전투를 치른 러시아 혁명 반란군의 백전노장입니다. 온갖 시련을 견뎌내며 투쟁하지만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정치적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힌 상태입니다. 그리고 내일 날이 밝으면 처형되는 운명에 처해있지요.

춥고 깊은 밤, 그의 생의 마지막 밤, 고요하고 차가운 독방에서 그는 자신을 구원해 줄 유일한 존재, 따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요하고 차가운 독방에 죽음을 앞둔 이반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여상은 따슈인가요?

그렇지요. 이반은 자신을 구원해 줄 따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반은 초조해지고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커집니다. 누구나 고요하고 차가운 독방에 갇혀 죽음을 기다린다면 불안함과 초조함이 극에 달하지 않겠어요?

죽음을 대하고 있는 절박한 마음에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반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절규합니다.

그의 바람도, 기다림도 소용없이 날은 밝았습니다. 그가 처형된다는 의미죠. 이제 날이 밝았으니 그를 구원해 줄 땨슈도 없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그는 모든 걸 체념하고 처형만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용감하게 죽겠노라고.

이번 공연은 어떻게 기획이 되었는지요?

작년에 한양대 제자였던 백일성 연출가가 저를 찾아왔어요. 스승에게 헌정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한국 독재정권 하의 정치범을 소재로 썼다가 러시아 혁명 반란군의 이야기로 바꿨습니다. 작품을 읽어보니 훌륭했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구성도 좋았고 읽으면 읽을수록 몰입이 됐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을 내었죠. 거기에다 또 다른 제자인 이 곳 윤당아트홀의 고학찬 사장이 선뜻 무대를 내어주었습니다.

이미 극장에는 작품이 공연 중이라 공연이 없는 월요일에 공연하기로 해서 두 달의 기간으로 기획을 하게 된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공연이 결정난 뒤 두 달간 혼신을 다해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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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꿈꾸다 구원의 여인 따슈를 기다리는 이반가가노비치

태어나신 곳이 만주에 있는 용정이었지요?

제가 태어난 해가 삼일 운동이 일어나고 나서 1929년 백두산 동쪽 두만강 인근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곱고 아름다운 여성이셨고 아버지는 의사셨습니다. 집안은 기독교 집안으로 화목했고,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십대 시절을 북간도 용정에서 보냈습니다.

북간도 용정하면 당시 유명했던 사람들이 많았지요?

윤동주 시인이 계셨고, 문익환 목사, 안병욱 박사, 그리고 순애보를 썼던 소설가 박계주씨도 용정 출신이었죠. 윤동주 시인은 저보다는 10살 연배셨고 문익환 목사님과는 동기셨어요. 말이 없었고 체구가 생각보다 조그맣고 얌전한 새색시 같았는데, 내 친구 윤일주의 형님이어서 더 친했습니다.

그때 용정에서는 박용길이가 제일 예뻤었는데 하얀 한복을 입고 용정중앙교회에 나타나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어요. 당시 교회를 다니던 남성들이 한 번쯤 마음속에 흠모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나중에 문익환 목사님과 결혼을 하시더군요. 문익환 목사님은 나중에 저의 주례를 봐 주시기도 했고요.

지나간 일이니까, 에피소드인데 용정의 광명중에서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님이 한 반이셨는데 어느 날 늦봄 문익환 목사님이 시를 써서 윤동주 시인에게 보여 줬데요. 그런데 윤동주 시인 왈, “익환아! 너는 시보다는 공부가 좋을 것 같아” 그래서 목회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연극에 매력을 언제 느꼈나요?

어느 날 이곳에 유랑극단이 들어왔습니다. 공연이 <바보온달>로 기억이 되는데요, 그걸 보고 나서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집에 와서도 잊혀지질 않았어요. 학교에서 친구들과 까불고 놀다가 책상 위에 올라가 흉내도 내고 그랬습니다. 연기에 대한 관심은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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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젊은 청춘을 그리워하며 열연을 펼치는 배우 양동군

대학에서는 신학을 전공하셨지요?

유복했던 가정이어서 어려움은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중 1때 돌아가셨어요.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용정에 있는 용정중앙교회엘 다녔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의 아버님이신 문재린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교회인데 문익환 목사님은 저보다 10세 연배셨고 그의 동생이었던 문동환 씨랑 같이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의 교리가 제게 스며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머니께서 목사가 되기를 바라셨어요. 순종하는 마음으로 1946년 한신대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설파하는 교리에 100% 동의한다는 서약에는 차마 “예”라고 할 수 없어서 목사 안수를 받을 수가 없었지요.

이태리 국가 초청 장학생이셨지요?

6·25 한국전쟁 중에 이탈리아에서 세워준 군병원에 통역 장교로 근무한 인연으로 이탈리아 정부 초청 한국인 1호 장학생이 되었습니다.

신학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지만 저는 설교보다 영화를 통해 전도를 하겠다며 로마의 국립영화실험센터에서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해 이태리 국가 초청 장학생으로 1957년 유학을 떠났습니다.

영화를 공부하다 보니까 드라마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이태리 국립연극학교에서 연출과 연기를 공부했습니다.

동양인 최초로 미국 예일대학교 대학원 드라마 스쿨에 입학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영화 공부를 하다 보니 드라마의 세계가 너무 좋고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1959년 예일대 대학원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미국문화원에서 담당 교수가 와서 시험을 보는데 예일대학의 원칙이 2개 언어가 능통해야 된다고 해요. 그래서 처음에 영어로 시험을 보고 이태리 말로 영화를 평했던 것 같아요.

저는 시험을 처음 봐서 어떻게 보는 줄도 몰랐지요. 영화평론 시험이 끝나고 교수가 몇 가지를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략 한 시간 반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시험을 마치더니 바로 즉석에서 교수가 악수를 청하면서 합격이라고 해요. 캠브리지 출신, 프린스톤 출신을 비롯해서 여러 명이 시험을 봤는데 저 혼자 합격이 된 것이지요. 그것이 동양인 최초의 합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입학을 하셨나요?

불행히도 입학을 하지 못했어요. 제가 북간도 용정 출신이라 적성국가로 분류가 되어서 미국에서 비자가 나오지 않았어요. 모택동이 살아있던 때였고, 제가 만주인 북간도 용정에서 17년 동안 살았고, 남한에 직계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적성국가 출신으로 분류되어서 입학을 거부당하게 된 것이지요.

1961년도 한양대학교에 자리를 잡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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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2월, 미국 최고의 여배우 Helen Hayes 방한 때. 좌로부터 정원지 교수, 한 사람 건너
김정옥 교수, 여운계, 얼굴만 보이는 이가 이근삼 교수, 박명희 씨, Romney Brandt,
Helen Hayes, 故 양광남 교수, 양동군 교수, 김의경, 故 허규 등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 연극계의 해외 유학파 연기자는 당시로서는 프랑스에서 공부한 김정옥과 미국에서 공부한 양광남이 중앙대학으로 갔고, 저는 1961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로 부임을 했습니다. 한양대학에 연극영화과를 개설한 첫 해에 자리를 잡은 것이지요.

첫 제자로는 최불암과 태현실이 있었고, 그 후에 장용, 노주현, 고학찬, 임현식 등이 제게서 배운 제자들이지요. 하지만 군사정권에 반기를 들다가 얼마 안 가 학교에서 쫓겨났고 정권에 밉보여 대학 강단에 섰다 내려왔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사설학원 영어강사가 돼 있었던 거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모든 걸 접었던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19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공연 에 출연하셨지요?

1962년에 남산에 있는 드라마센터가 개관하면서 기념 공연으로 유치진 연출로 <햄릿>을 공연했습니다. 햄릿은 김동원, 최상현, 왕비는 황정순, 박명희, 천선녀, 오필리어는 오현주, 권영주, 김보애가 캐스팅되었어요. 저는 레어티스 역을 맡았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기성연극인들과 대학극 출신 해외유학파 등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신협 출신으로는 이해랑, 김동원, 황정순, 오사량 등이 있었고 대학극 출신으로는 김동훈, 오현경, 나영세, 박규채, 권영주, 오현주, 최상현 등이 포진했죠. 해외 유학파로는 저와 김정옥, 양광남, 박명희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습을 하면서 기성 연극인들과 젊은 세대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미묘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미친 오필리어를 보는 순간 너무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바라보는 것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치진 선생은 드라마가 안 된다면서 오필리어를 붙들고 절규하라고 요구를 했는데 저는 신파조 연기에 동의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러면서 갈등이 표면화되었고 저는 기성 연극계의 눈 밖에 나게 된 것이죠.

당시 미 8군 연극학교 교수가 제 연기를 보고 감명 받아 영자신문에 크게 기사를 실어줬던 일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기한 건 1973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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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대학교 최고령 강사로서 ‘영상예술의 이해’를 정력적으로 강의하시는 모습

연기에 대한 짝사랑만 하신 셈이네요?

그렇죠. 그 이후론 머슴 생활만 했죠. 생계를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어요. 머슴 생활을 한 것이지요. 연기에 대한 갈증이 극에 달한 적도 많았지만 억지로 삭이고 삭이다 보니 세월이 훌쩍 흘렀습니다.

일흔 살에 다시 외국어대학에서 ‘영상예술의 세계’ 과목을 강의하게 됐지만, 배우로서 연기를 하기는 너무 늦은 듯했었지요.

후학들에게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우리 세대는 가장 힘든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공부도 하지 못하고 고생만 했었죠. 하지만 저는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온 세상은 무대, 모든 남녀는 한낱 광대’라는 셰익스피어의 말마따나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연기하고 싶었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 양동군은 지금이라도 무대에 섰습니다. 제가 목숨이 다해 죽는 날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관객과 배우는 서로 호흡하고 도와주는 운명 공동체 같은 존재입니다. 서로 서로 멋있는 공연을 통해 우리 인생이 좀 더 해맑은 인생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꿈을 말씀해 주시지요.

외대 총장인 조규철 박사의 권유로 한국외국어대 교양학부에서 강의한 지가 벌써 11년째네요. 베케트의 <Last Tape>,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와일드의 <살로메>, 메테를링크의 <파랑새> 등 너무 훌륭한 작품들이 많아요.

원어로 읽었을 때의 그 감동, 그런 아름다운 희곡을 차례차례 번역하고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제 나이가 다해 죽을 때까지 꼭 무대에서 연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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