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튜닝할 때는 5번 A음을 기준으로 음을 맞춘다. 오케스트라에도 많은 악기가 편성되어 있지만 연주 시작 전에 모든 악기들이 오보에의 A음에 맞춰서 조율을 한다. 오보에는 선율이 고와서 독주에도 연주되지만 음색이 부드러워서 모든 악기들과 협주가 더 잘 어울리는 악기이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정중앙에는 오보에가 위치하고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오보에스트로 나오는 이순재는 이 작품의 배역처럼 오보에를 닮아 있다. 항상 연극 정신을 가지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작품의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1935년 10월 10일에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이순재는 해방 이후 월남하여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서울대 재학 시절 학교에서 연극연구회가 만들어 졌는데, 이 때 지금의 현대극장 김의경 대표, 연출가 허규, 권오일 등과 함께 연구회 창립 작업에 동참하면서 연극 세계에 접하게 되었다. 이 후 1956년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50년이 넘는 연기 생활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이순재는 오랜 연기 생활을 하며 1977년에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으며, MBC에서 방송연예대상 대상, 연기대상 사극부문 황금연기상, 연기대상 PD상, 방송연예대상 공로상 등을 수상하였다. 또한 2002년에는 MBC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으며, 같은 해 문화광부로부터 문화의 날 보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고, 2010년에는 제1회 서울문화예술대상 문화예술인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하였다. 이순재는 1971년에 연기자협회 제1대 회장을 역임하였고, 2009년에는 제6회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으며, 2010년 12월에는 제2회 대한민국 서울문화예술대상 심사위원에 선정되었다. 한때는 정치계에도 입문하여 제14대 민자당 국회의원과 민자당 부대변인을 역임하기도 했다. 지금은 세종대학교에서 제자들을 위해 연기 지도에 땀을 흘리고 있다.
지금 [돈키호테]를 공연하고 계시지요?
명동예술극장에서 엊그제 시작해서 내년 1월 2일까지 공연을 올립니다. 젊은 시절에 연기의 꿈을 가진 후에 언젠가 이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서고 싶었는데 더 이상 나이가 들면 체력적으로 힘들고 기억력이 감퇴해 대사 외우기 힘들어질까 봐 출연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제 나이가 현재로 일흔 일곱이예요.
일흔 일곱이 보는 돈키호테는 어떠한 인물인가요?
돈키호테는 정신착란증에 걸린 것 같기도 하지만 소년 같은 순수한 사람이에요. 모든 것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과 원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결단력이 강한 인물이지요. 작품 자체가 희극적이고 재밌는 부분이 많아서 관객들을 웃기기도 하겠지만 인물 설정에서 돈키호테의 단순함이 현실 사회와 부딪히면서 생기는 페이소스로 인해서도 자연스럽게 웃음이 유발될 것입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것이 처절하게 보일 수도, 재밌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965년 동양방송개국과 함께 드라마에 참여하게 되었다.(왼쪽) 당시의 연기 장면
작가 세르반테스가 말하려는 돈키호테의 인물 성격은?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창조해 낸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동시대의 영국 작가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죽었어요. 1616년 4월 23일이죠. 하지만 두 사람이 창조해 낸 인물의 성격은 판이해요. 특히 햄릿과 돈키호테가 그렇지요. 햄릿이 고뇌하는 인간형이라면 돈키호테는 풍차를 향해 용감무쌍하게 돌진하는 인간형이죠.
러시아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1860년, 고민만 하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햄릿형 인간’과 엉뚱하지만 고집스럽게 목표를 추구하며 저지르는 ‘돈키호테형 인간’을 분류해서 극명하게 대비시켰죠. 물론 투르게네프는 쉼 없이 저지르는 돈키호테에다 손을 들어줬어요. 저 역시도 돈키호테의 인물 성격이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작년에 백상 예술대상에서 공로상을 탔던 것이 화제가 되었는데요, 거기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감사합니다. 2010년엔 남자 최우수 연기상에 도전하겠습니다.”
말 그대로예요. 나이 들면 죄다 공로만 들먹이지, 능력으로 보려고 하지 않아요. 비단 나뿐만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도 평가를 해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젊은 애들에게 상 주는 건 좋은데, 능력껏 평가를 해야죠.
요즘 젊은 친구들은 어떤가요?
요즘 아이들 정말 영민하고 감수성도 뛰어나요. 용모와 체격도 월등히 좋아졌고, 그런데 얼굴이 굳어 있어요. 인간미가 안 느껴진단 말예요. 노래하고 모델 서던 애들을 두 달 연습시키고 드라마로 보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당장은 인기 끌지 몰라도, 평생 가겠어요? 애들을 소모품처럼 써버리는 방송사들이 문제예요.
그렇다면 젊은 친구들보다는 방송사 구조가 문제인가요?
사실 보면 어떻게 스타가 됐는지 모를 연기자가 한 둘이 아닙니다. 그룹에서 노래하던 가수에게 덜컥 주인공을 주는 게 우리 드라마 제작 현실입니다. 발상 자체가 우습죠. 지금 톱스타 중 고두심이나 김희애처럼 나중에 엄마, 아줌마 역할을 할 만한 배우가 누가 있습니까? 회당 출연료 4000만원을 받아도 200만원 어치도 못하는 연기자들이 쌔고 쌨어요.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에서 바람난 노인 박동만 역을 맡아 성병숙과 함께 열연하는 모습
그렇다면 바로 나온 대본을 외워서 연기하시나요?
모레 <대물> 촬영이 있는데 아직도 대본을 못 받았어요. <대물>뿐 아니라 드라마는 대부분 ‘쪽대본’을 받아 촬영하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원래 사전 제작이 기본이에요. 이런 시스템은 창피해서 다른 나라에선 말도 못 꺼냅니다.
하루 연습한 축구팀하고 한 달 준비한 축구팀하고 싸우면 누가 이기겠어요? 일본, 미국 드라마와 경쟁해서 이기려면 지금 환경에 만족하지 말고 전략을 세워서 완성도 높은 드라마 제작에 힘써야 합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우리 동양방송 시절엔 안 그랬어요. 신봉승, 김수현이 말석이었을 때지요. 작품성과 내용이 다 훌륭했어요. 작가들이 3고, 4고를 쓰며 자존심을 걸었어요. 지금처럼 ‘쪽대본’ 이런 거 없었어요. 그리고 지금 드라마에는 영혼이 없어요.
그렇다면 사전 제작이 대안인가요?
사전 제작은 기본이에요. 그리고 요즘 작가들은 어깨 너머 배운 이들이 대부분인 게 문제에요. 물론 그중에서도 잘 쓰는 작가도 있긴 하겠지만 예전처럼 문단에 등단한 작가들이 드라마를 쓰는 경우가 얼마나 됩니까? 어찌됐든 최소한 논리가 맞지 않고 사실과 다른 부분은 없는지 검증하고 다섯 번은 퇴고해야 합니다. 노트북은 뭐 폼으로 갖고 다니나요?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작가가 모르면 초짜의 경우 PD도 모르고 배우도 모르고 세 바보가 시청자들에게 조롱받게 되는 거라고요.
1970년 일본에서, 배우 윤정희와 함께
암기력의 비법 같은 것은 있나요?
제 건강의 비결은 정신력과 자존심입니다. 배우의 치명적 조건은 암기력의 쇠퇴에요. 대사 틀려서 후배들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 되잖아요? 가령 내일 녹화인데 오늘 대본이 나와요. 그러면 바로 외워야 하는데 암기력이 못 따라오면 안 되지요. 그 자리에서 외워야 넘어가게 되니까 암기력이 못 따라 가면, 그건 물론 하기야 하겠지만 NG 내면 그때부터는 벌써 꼴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내 나름대로 암기력을 키우는 몇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조선 왕조, 명산 이름, 그리고 미국의 역대 대통령과 주 이름, 일본의 47현 이름을 줄줄 외우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머리가 회전하는 것이 느껴져요.
시트콤에서 ‘야동 순재’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인기를 얻으셨는데요?
시트콤이라는 건 순간적인 표현이 대단히 필요한 장르에요. 그게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인데, 극히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절묘하게 감정적 표현을 하는 거란 말이지요. 이런 것들은 그냥 가지곤 안 됩니다. 나름대로 그걸 만들어 낼 수 있는 자기 이미지가 있어야 되고, 그런 건 젊었을 때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머릿속에 메모리가 입력이 돼 있어야 해요. 그런 것들이 필요할 때 재빨리 나와 주는 것이죠.
영화로 만들어진 <그대를 사랑합니다> 출연진과 함께,
좌로부터 이순재, 윤소정, 김수미, 송재호
혈색이 아주 좋으신데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시는지요?
저는 드러누워 앓을 시간이 없어요. 일주일 내내 드라마 촬영이 있지요. 학교 강의, 그리고 직함을 걸어놓은 사회단체 활동이 많아서 앓아누울 시간이 없어요. 열심히 일하는 것이 건강의 비법인지 모르겠네요. 운동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골프하러 나가는 정도죠. 실력이 많이 뛰어난 편은 아니고 보기 플레이어 정도입니다. 그마저도 요즘처럼 드라마 촬영이 바쁠 때면 공 칠 엄두도 못 내죠.
그리고 제가 세종대에서 10년째 강의를 맡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오후에 촬영이 없을 때면 학교로 가서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젊은 친구들과 공부도 하고 밥도 먹으면서 어울리다 보면 생각이 조금 젊어지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의 일과는?
드라마 두 편을 찍고 있습니다. MBC ‘욕망의 불꽃’과 SBS ‘대물’에 출연하고 있으며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돈키호테> 공연도 여전히 순항 중이고요. 다행히 한명구씨와 더블 캐스팅이라 조금은 빠져나갈 구멍은 있습니다. 그리고 세종대학 연극영화과 3학년 연기실습 수업이 있어요. 요즘은 공연이라 수업 시간 외에서 시간이 나오면 나와서 학생들을 지도합니다. 주말에도 나와서 학생들과 함께 연극 연습을 합니다.
그렇다면 주무시는 시간이 있기나 한 것인가요?
잠자는 시간은 대중없어요. 촬영이 있는 날이면 한 시간 눈 붙이고 나가기도 합니다. 운동을 하거나 보양식을 먹는 것도 없어요. 연기와 관련된 모든 일은 내겐 소명이자 의무감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 의무감으로 다가왔는지요?
연기를 시작한 처음부터 그랬어요. 제가 연기를 시작한 50여 년 전에는 배우가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었지요. 배우가 돈을 벌기 시작한 건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였어요.
배우들이 광고에 출연하면서 큰돈을 받았는데 처음엔 저도 배우가 광고를 찍는 것에 부정적이었요.
왕성하게 활동하면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요. 요즘 젊은이들이 외적으로 얼마나 수려해 졌나요? 제대로 가르치기만 하면 우리 배우들도 할리우드에서 얼마든지 팔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배우는 일단 언어 전달이 정확해야 합니다.
경상도 출신이든 충청도 출신이든 배우는 표준말을 써야 해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덕성을 쌓는 일입니다.
왼쪽은 3살 때. 가운데는 서울대 철학과 졸업 사진. 맨 오른쪽은 14대 국회의원 모습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이제는 내 동료 배우가 없어요. 신구, 최불암도 모두 후배에요. 하다 보니 세월이 흘러 가장 연장자가 됐을 뿐인데 내가 연장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중간에 끼어있는 세대랄까. 나이를 의식하고 그걸 권위로 착각하는 배우들이 간혹 있었는데 그들의 배우 생명은 조로했어요. 배우란 직업은 늘 백지 상태인 거죠.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은 저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마다않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는 달려가니까 그런 거겠죠.
바쁜 생활 탓에 가정에선 점수가 높지 않겠네요?
많이 얻지 못했지요. 젊을 때는 더 했어요. 요즘은 그런대로 가족들이 이해해 줍니다. 요새는 영화 1편을 찍으면서 1년 내내 신선놀음 하지만 60∼70년대는 1년에 10편도 촬영했어요. 하루를 4등분해서 4편을 찍을 때도 있었는데 일주일에 5일은 외박이죠. 배우는 직종 자체가 자기중심적이어서 집안에서도 잔소리를 하지 않아요. 5학년 외손자와 8살 외손녀에게만은 예외죠. 용돈 달라는 심산으로 집에 자주 놀러오지만 그래도 할아버지 마음은 언제나 ‘무조건 OK’ 입니다.
요즘 모두 불황과 위기를 말합니다. 문화가 위기를 극복할 묘안이 있을까요?
드라마와 영화 할 것 없이 초심으로 돌아가야죠. 배우의 연기나 영화와 드라마의 영상은 시청자와 관객에게 절대 사기를 칠 수 없는 분야입니다. 2004년 한류가 반짝했다고 모두 그 길을 좇았는데 시청자는 바보가 아닙니다. 거리에서, 기획사에서 검증받지 않은 배우를 데려와 드라마 만들고, ‘쪽대본’이 나오는 환경은 결국 전체를 퇴보시킵니다. 사전 제작 시스템을 도입해 가진 역량의 100%를 발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희망’을 실천하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절망하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늘 이뤄왔습니다. 그 저력은 바로 우리예요. 문화도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갈등이 중요하지 않고 화합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적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으니까요. 대중문화 전체의 잘못된 관행을 덮지 말고 똑바로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한류는 반드시 다시 옵니다.
연극을 하시게 된 동기가?
우리 때는 배우가 돈 버는 직업도 아니고 명망을 얻는 직업도 아니었어요. 저는 예술적 욕구와 충동에서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작가주의 예술영화, 미국의 장르 영화와 영국의 셰익스피어 시리즈에 나오는 로렌스 올리비에 경과 존 길가드처럼 작위를 받은 대가들의 명연기를 보면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대학은 철학과를 나왔는데 그때 서울대 연극연구회를 만드는 데 함께 했어요. 지금 현대극장의 김의경 대표와 작고하신 허규, 극단성좌의 권오일 선생 등이 당시에 함께 하던 연극 동지였어요.
연기력은 타고나는 것인가요?
선천성은 10∼20%밖에 안 된다고 봅니다. 나머지는 노력이에요. 노력으로 모든 악조건을 극복해 낸 것이지요. 제가 젊었을 때는 콤플렉스가 좀 많았어요. 무엇보다 이 목소리가 문제였죠. 그때는 남자 배우라고 하면 로맨틱한 저음이 인기가 많았거든요.
저는 걸걸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라서 감독들한테 지적도 많이 받았지요. 그리고 키가 작다는 소리도 참 많이 들었고요. 그래도 아직까지도 제가 배우로 살고 있는 걸 보면 인기보다는 노력으로 배우 생활을 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아요.
연기 훈련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사가 된다고 연기하는 게 아닙니다. 대사 몇 번 읽어보고 깡패 연기는 잘할 수는 있어도 변호사나 의사 등의 전문직의 지적 수준은 잘 안 나옵니다. 외형만 갖췄기 때문이죠. 대사 구사력과 화법 수준에서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러니까 표준어 구사는 물론 발성, 음색, 발음에 대한 연구도 평생 해야 합니다.
연기 훈련이라는 것은 수련과 훈련을 하면서 평생 실력을 쌓아가는 하나의 과제인 것입니다. 연습을 안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연기자로서 평생의 업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능력이란 바로 연기력이에요.
의욕만 가지고서는 결코 ‘평생 연기자’가 될 수는 없어요.
국회의원도 하셨고 사회적으로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시는데요?
서울 중랑구에서 여당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적은 없었어요. 저는 돈 많은 국회의원은 아니었지만 주민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내 진심을 알아주고 나를 뽑아준 주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면목동에 문화원을 세우고 5년 간 원장을 지냈고, 지난 8월까지 6년간 사회복지협의회장을 지냈어요.
최근에 최수종과 이덕화가 만든 연예인 봉사단체에는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지요. 저뿐 아니라 연예인들이 봉사활동에 많이 앞장서고 있고, 또 그런 사례가 많이 늘어나야 합니다. 그게 배우에게 주어진 또 다른 사회적인 책무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