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 예술의 ‘엉킴과 마찰’이 빚어내는 동시대의 무대
글- 김은균 (복지tv 기획피디, 공연평론가)
25회를 맞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올해 ‘엉킴과 마찰(Entanglement and Friction)’이라는 주제로 돌아왔다. 10월 16일부터 11월 9일까지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등 서울 주요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이번 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 아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최·주관한다.
SPAF는 지난 25년간 세계 공연예술의 흐름을 담아내며, 동시대 예술가들의 시선과 감각을 소개해왔다. 올해는 그 역사 위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기술·과학의 관계, 사운드와 뉴뮤직의 확장, 국제 협력을 통한 무용 언어, 아시아·태평양 예술가들의 관점이라는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오늘날 예술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예술감독 최석규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담론과 예술 형식의 변화를 매끄럽지 않은 충돌과 균열 속에서 바라보며, 그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즉, 이번 SPAF는 완성된 형식의 ‘축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예술적 언어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진행 중의 실험’이다.
■ 마거릿 렝 탄의 서정적 사운드 자서전
드래곤 레이디는 울지 않는다 (Dragon Ladies Don’t Weep)
이번 SPAF에서 특히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는 싱가포르 출신 피아니스트 마거릿 렝 탄(Margaret Leng Tan)의 사운드 퍼포먼스 <드래곤 레이디는 울지 않는다>이다.
‘존 케이지(John Cage)’와 ‘조지 크럼(George Crumb)’의 뮤즈로 알려진 그녀는 지난 40여 년간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토이 피아노(Toy Piano)’라는 독특한 악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아티스트다.
이 작품은 그녀의 오랜 협업자인 작곡가 에릭 그리스월드(Erik Griswold)가 만든 피아노, 토이 피아노, 장난감, 타악기용 오리지널 음악 위에 마거릿 렝 탄의 목소리·녹음된 텍스트·이미지 프로젝션을 결합해 구성된다.
무대 위에서 그녀는 자신의 예술 여정을 되짚으며,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삶의 궤적을 서정적으로 풀어낸다. 단순히 한 예술가의 회고록이 아닌, 소리로 쓴 자서전에 가깝다. 그녀의 연주는 건반을 넘어 장난감, 타자기, 일상의 물건으로 확장되고, 그 안에서 음악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이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으로 하여금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살아내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드래곤 레이디는 울지 않는다>는 2020년 멜버른 예술센터(Arts Centre Melbourne) 초연 이후, 2021년 오스트레일리아 예술음악상(Australian Art Music Award) 드라마틱 부문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두고 “진정성 있고 개인적인 예술적 표현으로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고 평했다.
한 평론가는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구성, 그리고 그녀의 존재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순간”이라며 “지금 이 순간 위대한 인물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공연”이라고 극찬했다.
■ SPAF가 선택한 이유 — 경계의 확장, 그리고 인간의 목소리
올해 SPAF의 키워드 ‘얽킴과 마찰’은 바로 이 작품의 핵심과도 맞닿아 있다.
마거릿 렝 탄의 퍼포먼스는 기술적 혁신이나 화려한 무대효과보다, 인간 내면의 흔들림과 예술의 본질을 탐색하는 아날로그의 온기에 집중한다.
그녀의 목소리, 손끝의 소리, 피아노의 미세한 울림이 하나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마치 인류의 기억과도 같다.
‘울지 않는 드래곤 레이디’라는 제목처럼, 삶의 상처와 시간의 무게를 온몸으로 버텨낸 예술가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예술이 세대와 국경을 넘어 인간을 잇는 언어임을 증명한다.
■ 마거릿 렝 탄(Margaret Leng Tan)
싱가포르 출신 피아니스트, 뉴욕 활동
존 케이지, 조지 크럼의 협연자로 알려짐
‘토이 피아노’ 연주의 선구자
2021년 오스트레일리아 예술음악상 올해의 작품상 수상
드래곤 레이디는 울지 않는다 는 결국 한 예술가의 인생을 통해 예술 그 자체의 의미를 되묻는 무대다.
삶의 상처, 기억, 그리고 끊임없는 예술적 실험이 하나의 음악처럼 흐르며, SPAF 25년의 주제처럼 — 얽킴과 마찰 속에서 예술의 새로운 울림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