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감시의 시대, ‘진실’을 향한 몸의 탐구
― 상지자(Sang Jijia)의 〈Mr. Blank 2.0〉, 디지털 감시사회를 응시하다
글 – 김은균 (복지tv 기획피디,공연평론가)
■ 감시의 무대,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경계
알고리즘과 빅데이터가 일상을 지배하는 오늘, 홍콩시립현대무용단(CCDC)의 예술감독 상지자(Sang Jijia) 는 신작 *〈Mr. Blank 2.0〉*을 통해 “감시”라는 키워드를 새롭게 번역한다.
‘본 구역은 감시카메라 작동 중입니다’라는 강렬한 경고문으로 개시되는 이 공연은 관객을 단순한 ‘감상자’가 아닌 ‘관찰자’로 끌어들이며, 감시와 피감시의 경계가 흐릿해진 세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무대 전면에 세워진 투명한 격자형 유리 패널, 좌우 상단의 TV 모니터, 그리고 곳곳에 매립된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배우들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그 영상들은 무대 위와 동시에 관객석의 모니터에도 송출되며,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이러한 감시 구조 속에서 배우들은 벽에 부딪히고, 몸을 구기며, 탈출을 모색한다.
그러나 그들의 몸짓은 종국에는 절망과 무력으로 귀결된다.
이 무대는 마치 현대인의 삶 — ‘관찰되는 존재’로서의 인간,
자신의 시선조차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시대의 초상을 압축한다.
■ 몸의 언어로 드러난 디스토피아적 풍경
작품의 출발점은 미국 작가 폴 오스터(Paul Auster) 의 소설 『기록실로의 여행(Travels in the Scriptorium)』 이다.
기억을 잃은 노인이 폐쇄된 방 안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카메라와 씨름하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상지자는,
이 소설의 서사적 구조를 해체하고, 신체와 테크놀로지가 교차하는 새로운 무용극으로 재창조했다.
70분 동안 펼쳐지는 무대에서 열다섯 명의 무용수는
벽을 두드리고, 서로 얽히며, 때로는 절망 속에 몸을 던진다.
이들은 감시 체제 속에서 주체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초상을 구현하며,
관객에게 “나의 몸은 누구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특히, 무대 후반부에서 전면 패널과 업스테이지 벽면에 투사되는 영상은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허물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관객은 감시자의 시선과 피감시자의 고통 사이에서 끊임없이 위치를 잃고,
결국 스스로도 이 감시 구조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 시대의 거울, 예술의 응시
상지자는 이번 작품을 통해 팬데믹 이후 강화된 감시 사회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는 “우리가 스스로를 관찰하고 통제하는 시대,
무용은 여전히 진실을 탐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음악은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와 인간의 호흡, 탄식, 건반음이 교차하며
불안과 침묵, 감시의 리듬을 시각적으로 확장시킨다.
이 모든 요소는 상지자의 디지털 미학과 드라마투르기적 통찰이 결합된 결과물로,
‘무용을 통한 철학적 사유’라는 새로운 예술의 방향을 제시한다.
비평가 나타샤 로카이(South China Morning Post) 는
“무대 디자이너들의 뛰어난 역량이 더해져 무대가 한층 빛났다”고 평했고,
도라 라이(Dance Journal HK) 는
“프롤시니엄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몰입감을 선사한다”고 극찬했다.
또한 Cable News 는 “관객은 공연을 감상하는 동시에
‘관찰자’로 변해 각자의 Mr. Blank를 지켜보게 된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