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의 엇갈린 욕망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글 – 김은균(복지TV 기획PD·공연평론가)
■ 욕망의 무대가 재즈의 선율로 피어나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욕망과 허영 그리고 몰락을 다룬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국립극장 공연은 단순한 고전 재연이 아니라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살아난 무대였다. 뉴올리언즈의 재즈 선율이 극 전반을 감싸며 무대는 음악과 조명의 결로 이어졌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색소포니스트가 무대에 올라 재즈 선율을 불어넣는 순간, 관객은 이미 작품 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흐르는 숨결이 되었고, 빛은 감정의 리듬에 맞춰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벽과 창문에 투사된 그림자는 인간 내면의 균열을 시각적으로 상징했다.
연출을 맡은 조금희는 “좋은 고전 작품을 매년 새롭게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의도를 명확히 보여줬다. 그는 고전의 격식을 지키면서도 표현주의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징과 현실이 교차하는 무대를 완성했다. 무용수의 움직임, 조명의 결, 그리고 1940년대 재즈 음악의 변주가 어우러져 현실과 환상이 맞닿는 독특한 무대 언어를 빚어냈다.
■ 호흡과 리듬까지 계산한 각색자의 역량이 빚어낸 생생한 우리말
이번 공연의 각색을 맡은 박경희는 원작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2시간 반에 달하는 방대한 원작을 100분 내로 압축하면서도 번역투의 문장을 완전히 지우고 배우의 호흡과 말의 결에 맞게 우리말의 리듬으로 재구성했다.
그의 각색은 뜻을 옮기는 번역이 아니라 해석과 리듬, 그리고 연기의 호흡까지 계산한 섬세한 작업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배우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도록 감정의 온도를 세밀하게 조율했고, 결과적으로 관객은 살아 움직이는 우리말의 묘미를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외국극의 낯섦을 벗어나 완전히 한국 무대의 숨결 속으로 들어왔다.
■ 탐욕의 그림자 속에 비친 배우들의 놀라운 집중력
이번 공연은 초반 캐스팅이 무산되었다가 단 한 달 전에서야 최종 확정됐다. 불과 한 달 남짓한 짧은 연습 기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만큼 높은 완성도의 공연을 만들어냈다.
블랑쉬 역의 한다 김은 인간의 상처와 허영, 그리고 스스로의 속임수 속에서 살아가는 여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방은희와 함께 더블 캐스팅된 한다감은 불안정한 감정의 파동을 정교하게 드러내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블랑쉬를 그려냈다.
스텔라 역의 강은탁은 거친 남성성과 인간적 불안을 동시에 담아냈고, 욕망과 분노의 에너지를 쏟아내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았다.
박형준은 기존의 투박하고 거친 미치 역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었다. 그는 세련되고 감성적인 캐릭터로 미치를 재해석했고, 때로는 스텔라보다도 더 강렬한 존재감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박형준의 연기는 이번 공연의 중심축이자 완성도를 끌어올린 결정적 힘이었다.
■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1947년 발표 이후 수많은 무대에서 재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국립극장 공연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테네시 윌리엄스의 언어를 오늘의 감정으로 다시 살아나게 한 무대였다.
박경희의 각색이 불러낸 우리말의 리듬은 고전의 언어가 현대의 언어로 호흡하도록 만들었다. 이 공연은 한 시대의 욕망을 넘어 지금 여기의 인간 본성을 묻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무대와 음악, 조명, 배우, 그리고 각색이 하나의 호흡으로 어우러지며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무대 언어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