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 본다
한 걸음 두 걸음 내 그림자 따라
그림자가 나인가 내가 그림자인가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다가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 본다
한 걸음 두 걸음 내 그림자 따라
-내가 그인가 그가 나인가?, 俳優도 아니면서, 2003년 봄날에
장두이는 1952년 1월 9일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예대와 동국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1978년에 뉴욕 라마마 극단 초청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뉴욕시티대학교 브루클린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에야 연극의 길로 방향을 바꾼 그는 다시 서울예대 연극과를 다니며 연극 공부를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 무렵 장두이는 인간문화재 김숙자 선생을 무작정 찾아가 결코 짧지 않은 4년이란 기간 동안 우리 고유의 춤인 살풀이춤을 배우기도 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인 1986년에 미국 소수민족 아시아 예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2003년에는 뉴욕 드라마클럽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국내에서는 1995년 제31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남자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2006년에는 제 24회 한국희곡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장두이는 대경대학 연극영화방송학부 조교수와 인덕대학 방송연예과 부교수를 거쳐 현재는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제자들을 올바른 연기자로 길러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파우스트라는 작품을 연습하고 있어요. 3월 3일부터 3월 14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극단 미학에서 공연하는 작품인데 파우스트 역에는 김명수씨, 저는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맡았지요.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깊이나 무게감 때문에 무척 애를 먹게 됩니다.
작품 안에 신학(神學)이 기본적인 사상을 이루고 있고, 주술, 마력 등 형이상학적인 세계이다 보니까 깊이가 상당해요. 대사의 양도 엄청나고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다 보니까 상당히 고전하게 됩니다. 요즘은 연습 자체가 길어져서 밤 11시가 다 되어서 끝이 나곤 합니다. 이 작품에 거의 매진하다시피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많이 밝아 보이십니다. 그리고 나이를 전혀 유추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항상 6시 경에 일어납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마루로 나가서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합니다. 그리고 요가를 해요. 요가는 하드(hard)한 하타(Hatha)요가와 소프트(soft)한 쿠다리(Kudari)요가로 나누어지는데 제가 하는 요가는 격렬한 하타(Hatha)요가예요.
가만히 생각을 몸에 모두고 발끝으로 서 있다가 발뒤꿈치로 걷고 물구나무를 섰다가 엎드리고 일어서서 몸을 펴고 다시 눕는 동작으로 몸을 움직여 주다 보면 땀이 쭉 빠질 정도의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는 씻고 나서 정돈을 하고 책을 봅니다.
보통 아침 식사 전까지 이러한 시간을 반드시 지킵니다. 배우로서도 그렇거니와 건강을 위해서도 더 없이 유익한 투자인 셈이죠.
그로토프스키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시오.
첫 만남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오디션장에서 대뜸 제게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 불러보라”는 주문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뭐 특별한 것으로 한다고 한 것이 경기민요의 회심가였습니다.
“일-심으로 저은-넒-아- 억조창생은 다-만민 시주님 네에- 시주님 네에-이내에 말씀을 두어 보호소….”
회심가가 불교 노래라는 이야기를 들은 그로토프스키는 다시 한 번만 더 불러 달라고 해요. 그리고 또 다시 계속 반복하면서 노래를 한 거죠. 그리고는 동작을 보여 달라기에 우리 무속춤인 진쇄 춤을 되풀이 했어요. 오디션장이 O’ Court이라는 호텔이었는데, 아침 10시에 만나서 오디션이 끝나고 나니까 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 있더라고요.
반복을 하길 한 칠십 번 정도를 했을까? 처음에는 황당하다가 기분이 나빠 질려다가 그리고는 점점 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누가 이기나 점점 더 집중을 해서 노래를 불렀어요.
“일-심으로 저은-넒-아- 억조창생은 다-만민
시주님 네에- 시주님 네에-이내에 말씀을 두어 보호소….”
그리고 나서야 수십 번을 넘기고서야 그로토프스키가 멈추더니 짤막하게 ‘고맙다’고 해요. 아마도 이런 오디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을 거예요. 오디션이 끝나고 그로토프스키는 근처의 고급 일식집으로 초대를 해서 식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노래를 계속 부를 때 생명이 있는 법이다. 인간은 지쳐있고 피곤해질 때 가장 순수하고 본래의 모습이 나오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극도로 지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 이때 비로소 예술은 시작이 되는 것이다”라고요.
연극 <영웅을 생각하며>를 연출하며 제작 발표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다하고 있는 모습
꽤 오랫동안 살풀이를 추셨지요. 김숙자 선생님과의 인연을 말씀해 주십시오.
선생님을 뵈었던 것은 1976년 초였어요. 선생님은 당시 무형문화재 97호 도살푸리 인간문화재셨고요. 어느 일간신문 단신에 실린 ‘무속 무용 공연’ 안내를 보고 문예진흥원 지하 강당을 찾아갔죠. 저는 그때 고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울예대 연극과를 다니던 때인데 무당과 무속이 무엇이 다른지, 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무작정 찾아 간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되돌아 보면 얼마나 엄청난 순간이었는지!
그 날 전 우리 소리와 동작의 정수를 만끽하고 제 일생에 김숙자라는 위대한 스승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이죠. 다음 날로 춤을 배우고 싶다고 간절히 청했고 선생은 쾌히 승낙하셨어요.
그로부터 4년 간의 무용 수업은 저의 연기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선생은 경기도 안성 출신이셨는데, 당시 소리의 재인이었던 부친 김덕순과 세습무의 딸이었던 정귀성 사이에 셋째 딸로 태어나셔서 다섯 살 때부터 굿거리를 부친으로부터 배웠고, 당대 춤의 대가였던 조진영 선생님으로부터 승무, 태평무, 입춤 등을 익혔고 열두 살 되던 해 협률사에 들어가 무대에 서기 시작하셨어요.
인간문화재가 되신 후에도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무대에서 혼이 담긴 한국무용을 발전시킨 분으로 꼽히시죠.
전 1978년 뉴욕 라마마 극단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후 세계 곳곳을 돌면서 민속춤에 관심을 가지고 보았는데요, 항상 그들의 무용을 보면서 김숙자 선생님의 춤과 비교해 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춤은 그 민족의 감성과 생활습관, 자연, 그리고 신체적인 조건에 맞는 독특한 정서를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감았다 풀고, 굽었다 펴고, 멎었다 움직이고, 울다가 웃고,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넘쳐나는 정말로 우리의 춤은 세계적인 움직임이자 자연과의 합일체(合一體)입니다.
연극인생 40년을 결산하면서 장두이 연극소품전을 개최하였다, 인사동 가가갤러리
한동안은 작품을 하지 않으셨는데요?
1994년 귀국해서 1998년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작업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어떤 한계랄까 좀 답답해지더라고요. 한동안은 교재를 썼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후학들이 공부해야 하는 기본적인 서적들조차 없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예전부터 교육 현장에서 생각나던 대로 노트하고 모은 자료들을 가지고 틈틈이 정리를 하다가 장두이의 연기실론, 장면 연기 실습-서양 편을 펴내었습니다. 시집 몇 권과 희곡집, 그리고 에세이집인 공연되지 않을 내 인생을 출간했습니다.
1994년에 박정자 선배님의 <11월의 왈츠>를 연출한 일로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서로 연락을 잊고 있었는데 재작년 11월에 박 선배님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가나아트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선배님께서 “두이씨, <18&80>이라는 작품 알아?”하고 물으시기에 처음 듣는 작품이라 잘 모른다고 했는데, 대본을 받아 보니 부제로 <Halord & Mode>라고 적혀있기에 “아 이 작품이로구나!” 하고 읽어 보니까 술술 읽히면서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예요.
이미 이 작품은 미국에서 3번이나 영화로 보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편하게 들어왔어요. 그래서 연출제의를 받고 이 작품을 다시 기점으로 <End Game>, <빨간 피터의 고백>, 그리고 <파우스트>에 이르기까지 계속 작품에만 몰두하게 된 것이죠.
연극도중에 틈틈이 자신의 전공을 활용하여 희곡 및 책을 펴내고 있다
가지고 있으신 연기론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모방의 본능’에 대해 언급했듯이, 연기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였듯이 인간은 절대자에 의한 모방 본능을 타고난 셈이죠.
따라서 연기의 역사는 사실 인류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면서부터 있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곧 연기의 본 모습이며, 표현하려는 욕구와 본능이 곧 연기에 대한 잠재력이며, 바로 그것이 연기 표현의 예술적 의지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직업적인 훌륭한 배우들은 곧 표현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많은 연기의 방법론이 혼용되고 있는 속에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연기자들에 의한 연기가 금방 공감을 느끼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곧 연기는 진실성을 갖춘 현실적 사실의 공감을 전해 주는 인간 육체의 표현이라는 공통점입니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외국어를 쓰는 연기를 보고서도 공감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인간이기에 통할 수 있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연기는 그 목적과 방법이 동화 효과를 추구하건 이화 효과(브레히트가 주창한 연극론이나 몇몇 나라의 전통 민속극에서 보여지는 공연 효과)를 추구하건, 연기를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간의 교감에 의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예술적 육체 표현이라 할 것입니다.
훌륭한 비극 연기를 보며 울고 희극 연기를 보며 웃는 삶의 표현적 창조는 분명히 우리 모두의 본래 모습이며 대리 만족인 것입니다. 그동안 동양의 전통적 연기가 오랜 역사 속에 양식적이며 표현주의적인 모습으로 이어져 온데 비해, 서양의 연기는 많은 변모의 옷을 입고 진행되어 왔습니다.
즉 예술 사조의 흐름에 병행하여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왔고, 그런가 하면 문학으로서 희곡의 적절한 표현에 부응키 위해 서양의 연기는 그 실험을 거듭해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외로움과 소통에 관한 2인극 <등대>에서 이봉규와 함께
연기의 방법론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효율적인지요?
보통 연기의 표현은 상당히 중요한 방법론입니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Know-how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기는 인간 행위의 창조 작업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연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끌어내는 진실된 표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작품 속의 인물을 믿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하며, 이러한 표현은 배역에 적합한 화술과 발성, 신체 동작의 유기적인 조화를 꾀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생명력이 있는 표현 방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연기자의 기본적인 자세는 어때야 된다고 보는지요?
저는 연기자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항상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며 몸의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감각) 외에 하나를 더해서 저는 그것을 육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요, 영감(靈感,영혼의 감성)을 혼합할 때 비로소 완전한 연기를 표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이 평소에 훈련을 해 둬야 하는데요, 그 첫째가 좋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부지런히 책을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남의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접적인 지식과 더불어 직접적인 경험을 할 것이며 이는 주변 예술에 대한 이해와 실전 연습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예술의 가장 베이직(Basic)이랄 수 있는 문학적인 탐독을 게을리 하지 말 것이며, 미술이나 음악, 영화, 그리고 무용에 대한 훈련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로는 신체적인 부분인데요, 이는 구체적인 것으로서 몸 다스리기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매일 규칙적으로 발성을 비롯한 발음 훈련, 여기에는 노래 연습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칭을 비롯한 자기만의 몸 훈련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감성 훈련으로서 풍부한, 그러나 절제된 감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전 연기자를 시인에 비유할 때가 있는데요, 서정시, 서사시 등 시(詩)의 리듬과 율격이 몸에도 거침없이 흘러 넘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네 번째는 상상력에 대한 훈련이 필요한데, 연기자는 기존의 텍스트든 창작물이든 활자 속에서 그 것을 형상화시키기 때문에 상상력 훈련은 절대적입니다. 예술가에게 상상력이 없다면 그것은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상이어도 좋습니다. “무한한 상상력을 가져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관객이 배우보다 더 많은 상상력을 가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죠. 상상력을 위해선 빼어나고 세밀한 관찰력을 갖춰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끊임없이 간접 경험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인간 세계뿐 아니라, 동물에도 자연과 우주에도 각별한 관심을 길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좋은 교육 또한 절대 필요합니다.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에 도전하는 장두이,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
구체적으로 잘 설명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정신적인 부분과 두 번째 신체적인 부분은 자주 들었던 말이고 세 번째의 감성적인 부분들도 이해가 갑니다만, 상상력에 대한 부분들이 그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지요?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연기는 상상력의 발아체(發芽體)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상상력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일반적인 자유분방한 상상력이요, 다른 하나는 예술의 테두리 속에 가질 수 있는 예술적 상상력인데, 제가 여기에서 말하는 상상력은 후자입니다.
즉, 연극속의 상상력은 물론 무한하지만, 연극이란 범주 안에서의 상상력이 도움을 준다는 얘기입니다. 매체의 다른 속성은 존재하지만 영화나 TV도 마찬가지로 각각의 범주 속에서 배우의 상상력 발동은 시작돼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죽음을 연기하는 배우가 어디까지나 연기이고 곤한 잠을 자는 것도 연기이듯이, 각각의 다른 매체 속에서 배우는 연기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연기 속 인물과 연기하는 인간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이죠.
간혹 우리는 좋은 배역을 맡은 사람이 진짜로 착할 것이다, 또는 그 반대로 악역을 잘하는 연기자가 인간성도 나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술은 모럴(Moral)과 전혀 무관할 수 없는 것이지만 또한 절대적이지도 않다는 것이죠.
제가 잘 아는 어느 여자의 경운데요 그녀는 화면 속에 비춰진 늘 좋은 역만 하는 어떤 남자 배우에 반해서 결혼을 했답니다. 그러나 실제로 살아보니까 그 배우가 너무 다른 남자라는데 실망한 나머지 몇 달 후에 이혼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이처럼 연기는 가공의 진실을 창조하는 직업일 뿐, 실제 인생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죠. 여기에 연기의 재미가 있는 것이며 그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린 간혹 다큐멘터리가 드라마보다 더욱 진솔한 삶을 표현해 주고 있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그렇다면 진실로 좋은 연기란 다큐멘터리 이상의 진솔한 역의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라는 말도 성립하게 되는 것이죠.
내친김에 연기와 실제의 한 차이점을 극렬히 드러내는 예를 하나 더 들어볼까요? 유명한 미국 태생의 배우 더스틴 호프먼과 영국 출신의 로렌스 올리비에라는 두 명우가 <마라톤 맨>이란 영화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한참 촬영을 하고 있는데 방금 전까지 대기해 있던 더스틴 호프먼이 없어졌어요. 감독은 물론 모든 스탭들이 당황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얼마를 기다렸을까? 그때 공원 저쪽에 땀을 뻘뻘 흘리며 더스틴 호프먼이 숨 가쁘게 뛰어 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어디를 갔다 오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공원을 한 바퀴 돌았죠.”
그때 옆 의자에 앉아 씨가를 피우며 대본을 읽던 대 배우 올리비에가 일침을 놓습니다.
“이봐! 젊은 친구! 학교 다닐 때 연기 수업도 안 받아 봤나?”
연기는 실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어디까지나 ‘연기’인 것입니다.
실제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실감나게 연기를 할 것이 아니라 카메라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레디 고우 소리에 맞춰 얼굴에 물을 흠뻑 뿌리고 정말로 공원을 돌고 온 것처럼 연기하는 것이 곧 훌륭한 연기술인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사실적이며 동시에 진실되게 표현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리얼리티를 느끼게 해 주느냐 하는 것이지요. 바꿔 말해서 좋은 관객은 바로 그 연기술을 감상하는 것입니다. 마치 멋진 클래식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기법과 음악의 해석, 그리고 그 예술적 기교를 감상하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예술풍토 속에서는 너무 요원한 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