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강한 배우로 오현경 선생님이 계시다. 그는 송백당(松栢堂)이라는 화술 스튜디오를 3년 간 운영하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려고 애썼다. 오세곤 교수의 화술 수업도 ‘오현경 선생의 강의록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다’라고 고백할 만큼 그는 화술의 살아 있는 교과서이다. 결백한 선비와도 같은 기품은 연극을 예술로 보려는 그의 인생관과도 닮아 있다.
1936년 11월 11일생인 오현경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오현경은 자신이 배우이면서, 아내 윤소정과 딸 오지혜까지 모두가 배우인 배우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다.
그는 1961년 KBS의 1기 공채 탤런트로 방송국에서 연기를 시작한 이후 TV는 물론 연극과 영화에까지 영역을 넓혀 많은 작품을 통하여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특히 오현경은 국문학도답게 화술과 표준어 사용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여 거액의 사재를 들여 송백당(松栢堂)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연기 외에 우리말의 정확한 발음과 억양 등을 지도하는 집념을 보여 주었다. 오현경은 1966년 제3회 동아연극상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1983년에는 제7회 대한민국연극제 연기상, 1985년에는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연기상, 1992년에는 KBS 연기대상 대상, 2009년에는 제2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연기상을 각각 수상하였으며, 2010년에는 제3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지난 번 서울연극제 때 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선생님의 자전적인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저 노인네들이 어떻게 사나 그렇게 생각했겠지요? 저는 근본을 보여 주려고 했어요. 연극이 뭡니까? 배우와 관객이지 뭐. 그런데 다 잊어먹어요. 머리가 좋은 연출가들이 뭔가를 시도하려는데 잘 안 되거든요. 배우를 그만큼 이용을 못 해 먹는단 말이에요. 관객이 알아먹지를 못하는데 그게 무슨 연극이 됩니까?
어떤 연극을 하더라도 관객과 배우가 소통이 되어야 하고 감정의 교류가 되어야지 예술이 되는 겁니다. 이번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관객에게 뭔가를 주려고 했던 그런 연극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화술에 대해 많은 집착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건 말이에요, 음악 하는 사람이 화성을 알아야 하고 미술 하는 사람이 음영을 알아야 하듯이, 화술은 배우의 중심입니다. 연기에서 ‘크기의 조절’이라는 것이 있어요.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예를 들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소극장 무대라면 “예?”하고 눈만 번뜩여도 충격을 받았구나 하고 알 수 있지만 대극장 무대에서는 그렇게 하면 감정을 느낄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예? 어머니가요?” 하고 소리를 지르라는 것은 아닙니다.
무대에서 배우는 풀 샷도 클로즈업도 만들어 낼 수가 있어야 돼요. 그러려면 적당한 포즈와 대사의 강도와 동작의 크기로 조절하는 거거든요. ‘소리’는 극장의 가장 끝 벽에 부딪혀서 돌아옵니다. 그래서 대극장에서는 그 소리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사이를 두어야 하는 것이지요. 안 그러면 어느 공간에서 소리와 소리가 부딪혀서 잘 안들리는 부분이 생기거든. 그게 바로 연기의 크기 조절입니다. 미술 하는 사람이 단번에 피카소가 되지 않잖아요? 데생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연기에도 기초가 필요합니다.
화술은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올바른 언어 전달을 위한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오현경 선생님
가족 모두가 예술가 집안이시지요?
그렇지. 아내 윤소정은 배우이고 딸 오지혜도 그렇지요. 아내는 1960년대 TBC 탤런트 선후배로 처음 만났어요.
그런데 우리 두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 아주 달랐어요. 저는 소위 몰락한 지주의 아들이었고, 이 사람은 유명한 영화감독의 딸이었어요. 사귈 때 이 사람 집에 가봤는데, 집에 담이 없었어요. 영화 단역 하는 분들이 아침부터 밥을 먹고 있는데, 식구인 줄 알 정도로 자연스러워 보였어요.
그런 집에서 자란 사람이니 사고방식이 자유분방했지요. 그런 점에 이끌려 만났는데,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더군요. 언니가 시집을 안 가서 자신도 준비가 안 됐다는 거였지요. 그렇게 결별을 하고 집에 돌아 왔는데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조부가 돌아가시는 일이 생겼어요. 그때 아내가 “헤어지자마자 바로 그런 일이 생겨서 미안하다”며 문상을 왔어요. 그 후로 감사 인사를 핑계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평생의 반려이자 동지로 살게 된 것이지요.
1980년대에 내가 방송이 없어서 집안이 어려울 때 아내가 나 몰래 은찻잔 세트를 팔러 다닌 적도 있다고 해요. ‘소정 옷집’이라고 양장점을 한 적도 있었지요. 오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무대를 떠나지 않은 것은 배우로서의 자존감이 높았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배우로서의 자존감은 어디에서 나오는지요?
어느 날 <베니스의 상인> 공연을 마친 후 분장실에 있는데 제가 예전에 연기 지도를 했던 한 배우가 놀러 와서 그러는 거예요. “선생님, 아까 마이크 쓰신 거죠?” 아마 다른 배우들이 마이크를 사용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연극 <베니스의 상인>의 배우 김소희, 김길호,
오현경, 윤석화, 한명구, 정호빈(왼쪽부터)과 이윤택 연출가(가운데)
연극배우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발성 능력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명동예술극장 무대 같은 곳에서 마이크를 쓴다는 것은 배우로서 자존심이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대사를 외우는 것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아찔한 순간은 있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 공연 첫 날 대사의 리듬을 타지 못하면서 몇 초 간 대사를 놓쳤어요. 이윤택 연출은 더 느리게 대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내 리듬은 아니었던 거예요.
삐끗하면서 몇 초 간 대사가 이어지지 않았는데 몇 십 년 지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관객이 심각하게 느낄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로서는 엄청난 타격이었죠. 그렇게 오랫동안 내가 달달 외던 대사를 템포 조금 바꿨다고…. 집사람이 객석에 있다가 ‘아찔했다’고 하더군요. 그 다음 날부터 내 리듬대로 했는데 문제가 없었어요.
에서 이윤택 연출은 호흡을 잘 짚어내는 연출가인데 혹시 갈등은 없었는지요?
있었지요. 이번 작품은 샤일록의 이미지를 많이 바꿨습니다. 수전노라기보다는 베니스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핍박받는 유대인의 억울한 측면이 강조됐지요. 반면 안토니오를 비롯해 다른 인물들은 기독교의 타락한 측면이 많이 부각됩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동의했지요. 그런데 나는 원래 성격이 예술에 ‘사상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아예 목적극을 표방한 극이라면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 연극을 너무 많이 바꾸는 것에 대해선 동의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중간에 ‘못 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공연을 마쳤어요. 이윤택 연출과 같이 작업한 건 처음이에요.
그를 좋아하지만 막상 작업을 하면 해석이 다를 수 있죠. 나도 내 패턴이 있고, 연출이나 다른 쟁쟁한 배우들도 자기 스타일이 있다 보니 처음엔 부대낀 것도 사실입니다. 연습하면서 좋아졌어요. 적당히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건데 오해할 수도 있었겠네요.
이번 연극을 보고 어떤 연극인 중에는 실망을 하면서 제게 말도 잘 걸지 않으려는 경우까지 있었어요. 그런데 젊은 관객들은 이런 스타일의 연극을 무척 좋아했어요. 이번 연극은 흥행적으로는 성공했습니다. 저로선 대사보다는 보여주는 연극, 즉 놀이연극을 해보는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샤일록 역을 맡은 오현경, 그는 일반적으로 악인이라는 이미지로 인식되어온 샤일록을 인간적으로 표현해내었다
배우가 표준어를 써야하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표준어 얘기를 하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배우들 중에 지방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러나 표준어가 없는 나라가 있습니까? 그런데 정확한 표준말을 어디서 배웁니까? 영국에서는 ‘극장에 가십시오’ 합니다. 일본에서는 NHK 방송을 들으라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도 연극배우들에게 그 나라 말을 지켜주는 걸 기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 나라의 올바른 말을 배우가 구사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한 때는 서울 혜화동에 한 공간을 임대해 3년 간 송백당(松栢堂)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연기 외에 우리말의 장ㆍ단음 발음과 표준 억양 등을 지도했습니다. 개인 돈 1억 원을 투입한 후 수입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더 이상 센터를 지탱하기가 힘들어 문을 닫기는 했지만 지금도 여건만 된다면 후진들에게 올바른 발성과 표준어 교육을 시켰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연극 <봄날>에서 이대연과 함께
정확한 화술도 필요하지만 전달하려면 발성이 필요하지 않나요?
정확한 발성을 위해서는 선천적으로 좋은 목소리를 타고나야 하지만 훈련을 해야 합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의 발성 방식을 보면 횡격막에 공기를 채워놓고 바람이 모두 빠지기 전에 살짝 채우는 방식으로 해요.
무대에서 제대로 발성되지 않은 소리는 관객에게 들리지 않아요. 소극장에서는 대사가 잘 들릴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들리지 않을 때가 많아요. 아무리 작은 극장에서라도 저음은 저음대로, 고음은 고음대로 발성을 해야 합니다.
요즘 배우들은 대사의 분석을 대충하고 무대에 서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국어 교육이 잘못 됐어요. 말하기를 배우지 않아요. 서양말은 표준말을 배우려고 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선 공인이 지방말(사투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해요. 영어사전을 찾아보면서도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긴 발음과 짧은 발음에 대해서는 찾아 보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객석과 함께 연극 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연극할 때가 많아요.
일반인들도 정확한 발성을 할 수가 있는지요?
그럼요. 나를 보세요. 내가 인중이 짧아요. 발음을 정확히 하는 데 상당한 핸디캡입니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내가 발성을 배운 겁니다. 일반인도 정확한 발음을 배우기 위해서는 누웠다가 약간 일어나려는 자세를 한 채 신문을 읽어보는 것도 해볼 만합니다.
물론 일반인은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지만 정치인, 교수, 목사 등 대중을 상대로 하는 사람들은 배워야 해요. 과거엔 케네디 대통령도 별도의 스피치 고문을 두고 중요한 연설을 할 때에는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들의 발성은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잘 들렸지요. 박정희 대통령도 경상도 사투리이기는 하지만 뜻이 정확하게 전달됐어요. 김대중 대통령부터 잘 전달이 안됐어요. 이명박 대통령도 잘 전달이 안 되는 편이에요.
원래는 자기 의사가 100이면 120이 전달되도록 해야 하는데, 아는 것이 100이라고 하더라도 발성에 문제가 있다면 80밖에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암기력이 떨어지는데 대사를 외우는 노하우가 있으신지요?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 집니다. 그런데 빨리 외우면 금방 잊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연습하면서 대사를 암기하는데, 그러면서 연기도 함께 생각해요.
내 친구들은 ‘우리 나이에 어떻게 그걸 다 외우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물론 옛날에 비하면 ‘총명기’는 떨어집니다. 젊을 때에는 이 정도 하면 됐어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 안 되는 게 사실입니다마는 기억력은 타고 난 것 같기도 해요.
대학 시절에는 기억력이 더욱 비상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대사를 통째로 외운 적도 있어 영문학과에 다니던 친구가 시험을 칠 때 창문 밖에서 대사를 불러줘 도와준 적도 있어요. 그리고 그때 외운 <햄릿> 대사 일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요.
그런데 희곡은 읽고 외울 수도 있지만 긴 소설은 읽기가 힘들어요. 창피한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장편소설을 한 권도 못 읽어 봤어요. 그동안 창피해서 이야기를 못했는데 희곡은 읽을 수 있지만 긴 소설을 읽을 때면 책에 나온 내용이 계속 연상 작용을 일으켜 책을 계속 읽어 가기가 힘들어요. 물론 시나 단편소설은 읽을 수 있고, 희곡도 읽을 수 있지만 장편소설은 힘들어요.
2009년도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연기상’
수상 후 소감을 말하는 모습
이번 에서 맡은 인물인 샤일록에 대해 어떻게 인물 분석을 하셨는지요?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은 탐욕스럽고 비열한 고리대금업자예요. 돈을 빌려주는 담보로 인간의 살 1파운드를 요구할 정도이니까요. 지금까지 샤일록은 악인으로 주로 그려졌어요.
그런데 샤일록은 유태인이라 사람들한테 인간 취급을 못 받았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되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으로서는 원한이 사무쳐 있고 돈밖에 모르는 자로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하게 되죠. 그런 원한을 풀려고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요구한 겁니다. 돈 때문만은 그런 게 아니에요.
보통 안토니오는 선인으로, 샤일록은 악인으로 그려지지만, 이번에는 관습적인 선악 구도를 흔들어 악하기만 한 악인도, 선하기만 한 선인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요. 아마 연출가의 생각인가 봐요.
연극이 선생님께 주는 매력은 무엇인지요?
창조의 희열입니다. 내 인생이 아닌 다른 인생을 살아본다는 것은 큰 매력이지요. 극중 인물이 배우에 따라 달라져요. 관객들은 이런 것을 보고 재미를 느껴요. 그런데 정부도, 매스컴도 영화에만 관심을 둬요. 연극처럼 열악한 예술 분야를 좀 널리 선전해 줘야 하는데 영화만 선전해 줍니다.
오래 전에 영국의 한 작은 도시에서 대학생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배우들이 출연한 셰익스피어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해 주는 모습을 보고 많이 부러웠어요. 그때 옆에 함께 있던 영국인이 ‘우리가 이렇게 박수를 쳐 줘야 이 중에서 훌륭한 배우가 나와 우리를 즐겁게 해 준다’고 말하더군요. 보통사람들의 의식수준이 이러하니 영국 지성인은 수준이 얼마나 더 높겠어요.
친구들에게 가끔 ‘내가 50년 가까이 연극을 하는데 한 번이라도 연극을 보러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면 ‘초대권을 보내 줘야 연극을 보러 가지’라고 이야기해요. ‘친구들은 아직도 내가 학예회 하는 것으로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앞으로도 계속 연극무대에 서시는 거지요?
그럼요. 나는 항상 이번이 끝이라는 생각을 하고 공연을 해요. 지난해 출연했던 연극 <봄날> 극단 대표가 극단 창립 10주년을 맞는 2011년에 <봄날>을 또 다시 하자고 해서 ‘내가 내년을 어떻게 기약하느냐’고 대답한 적도 있어요.
연극계는 영화나 뮤지컬 등 다른 분야에 비하면 열악한 상황입니다. 일부에선 산업화 시대에 연극이라는 대중예술로 가기 힘든 측면이 있지만 연극의 위기는 1950년대, 60년 대에도 나왔어요.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 세계가 그런 편이에요.
연극하는 사람은 그래서 대개 가난해요. 그런데 사회에서 인정을 해주지요. 영국에선 뛰어난 연극배우에 대해 ‘경(Sir)’ 칭호까지 붙여 줘요. 어찌됐건 연극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연극을 볼 수 있는 좋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