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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택<HOLLYWOOD(헐리우드)에서 40년을 버틴 한국인의 집념>

엑터타임즈 2025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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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보다 유난히 빨리 찾아온 가을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종합예술학교가 자리 잡은 천장산의 밤공기는 안개에 젖어 있었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저녁 연습실로 찾아간 기자는 교수님과 학생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연습 분위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시간이 자정을 향해 가는 데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헐렁한 면 티셔츠에 청바지를 걸친 오순택 선생님이 자리하고 계셨다.

1943년 6월 29일, 전라남도 목포에서 출생한 오순택은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5가 끝난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 UCLA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연극 연기를 시작한 오순택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40여 년 동안 <007 시리즈> 등 2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였다. 그는 당시 미국의 유명 배우인 찰슨 브론슨, 로저 무어, 척 노리스 등과 함께 영화를 찍으면서 동양인 연기자로서의 긍지를 드높이기도 하였다.
오순택은 그의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아 1965년에 이어 1967년 두 번에 걸쳐 Harry Kurnitz 창작극상을 수상하였으며, 1969년에는 East West Players Repertory Co 최우수 극작상, 1979년에는 미국 드라마 로지 비평가상 최우수연기상, 그리고 2008년에는 제9회 미국 샌디에고 아시아필름페스티벌 평생공로상을 각각 수상하였다. 또한 그가 해외동포로서 미국에서 뛰어난 예술 활동을 하였음을 인정받아 2002년에 제 10회 KBS 해외동포상 예술부문상을 받았다.
오순택은 미국에서 극단 이스트웨스트 플레이어스의 단원 겸 감독을 역임했으며, 극단 더 소사이어티 오브 헤리티지 퍼포먼서의 대표와 예술감독으로 연기 활동을 이어 나갔다. 미국의 배우조합 회원으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며, 미국 내 한인예술가협회 이사장과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는 1973년 서울예술전문대학 초빙교수로 시작하여 서라벌예술대학 초빙교수와 서강대학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로 후학 양성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선생님 밤늦은 시간에도 이렇게 연습을 하시니 대단하십니다. 피곤하지는 않으신지요?

조금 피곤은 해도 다행히 학교 측에서 수업에 대한 배려를 잘해 주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까지는 대구 계명대에서 연극영화과를 만들면서 저를 초빙을 해 와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대구를 내려갔다 왔다 하니까 정말로 많이 힘들었어요.

특히 수업도 수업이지만 아이들한테도 많이 미안하더라고요. 끝나고 같이 있어 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다 보면 그 다음날 서울에서의 수업이 걸리는지라 많이 미안했지요. 그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애정을 가지고 교육을 해야 하는 건데 미안해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그만 두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부터는 연극원의 수업에만 전념을 할 수가 있어요.

수업은 목요일에 <카메라 연기 실습>이 있고 대학원 아이들 대상으로 <연기론> 수업이 금요일에 있어요. 그리고 매일 오후 6시에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과 유리피데스의 <메디아>를 각색한 <그리이스의 두 여인>(가제)라는 작품을 연극원 전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공연 연습을 하고 있지요.

좀 피곤하고 힘은 들어도 우리 아이들의 열정을 보면 저도 힘이 솟고 녀석들의 사랑을 흠뻑 받으니까 좋습니다.

배우는 몸이 악기이자 연주가라는 표현을 하는데 몸의 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특별한 방법은 없는 것 같네요. 다만 틈틈이 잘 쉬고 잘 잔다고나 할까.

여기 교수 연구실에 간이 접이 침대가 있는데 간혹 조금씩 낮잠을 자기도 하고, 그리고 배우로서의 이력이 붙다 보니까 이제는 몸에 대한 관리가 습관이 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고희를 넘기신 연세신데요. 아직도 청바지가 잘 어울리시는 걸 보면 뭔가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하시는 운동이라든지 뭐 그런 건 없으신지요?

칭찬이라 듣기 좋은데요? 아 그리고 보니깐 배우생활 초기에 마샤 그레이엄 (Martha Graham)무용학교 스쿨에서 잠시 모던 댄스를 배웠고, Louse Host에서 클래식 발레를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쿵푸>를 찍으면서 아무래도 작품 성격상 무술을 해야 하니까 그 때 배운 검도를 비롯한 무술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겠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배우로서 기본적인 트레이닝들이 자연스레 몸에 체득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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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국립극단 정기공연인 <떼도적>에서

어렸을 적의 성장 배경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태어난 곳은 전남 해남이었어요. 아버님은 강경 군수를 지내셨던 공무원이셨고 어머니는 자상하시고 예술적인 감성이 남달랐던 분이셨죠. 위로는 형님이 계셨는데 역시 아버님의 대를 이어서 주 오스트레일리아 공사관을 지내셨던 분이셨고, 저 역시도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지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분위기라면 유학을 간다든지 해서 국제 사법을 공부해서 관료로서 커 가는 그 당시 우리 세대의 보편적인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지요. 한 가지 취미라면 취미랄까, 그 때에도 뭐든지 읽을 거리만 있으면 몰두해서 읽곤 했었는데 그러다가 영화라는 것을 접하고 나서 이러한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 이런 세계에서 살아본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당시 책방을 뒤지다시피 해서 희곡이고 시나리오 등을 구해서 읽었어요. 그러다가 영어로 된 것들을 읽다보니까 자연스레 유학에 대한 생각들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1959년 미국으로 가서 UCLA(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였지요. 그런데 그때 저를 뽑았던 교수님들이 처음에 제 재능이 남달랐던가 봐요.

배우학교라는 곳이 있다고 추천을 해주시기에 ‘The Neighborhood Playhouse School of the Theatre’에서 연기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잘 아는 그레고리 팩, 스티브 맥퀸, 그리고 폴 뉴만, 죠앤 워드워드 등이 나왔던 배우 학교로서는 명문이었는데, 거기서 수학하면서 연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기 시작했어요. UCLA에서는 연기와 극작으로 MFA를 받고 ‘The Neighborhood Playhouse School of the Theatre’에서는 좀 더 실제적인 연기 공부를 했어요.

저희가 한국전쟁 끝나고 초창기에 건너간 아마 이민 1세대로 구분되는데, 그 후 40여 년 동안 연기 세계에 몸 담아 일 년에 대략 3∼4편 가량 했으니까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한 200여 편이 넘을 거예요.

초창기 이민 일 세대로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지금도 고향을 떠나면 고생인데 그 당시는 말할 것도 없지요. 영어는 광주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 때부터 원서는 읽을 수가 있었고 해서 차츰 극복이 되었고, 생활이나 공부나 이러한 것들보다는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 견딜 수 없이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HOLLYWOOD는 꿈의 공장이자 세계 상업영화의 메카였어요. 우선은 작품 선정에서부터 동양적인 감성은 배제되곤 했습니다. 왜냐면 속된말로 장사가 안 되니까. 철저한 상업적인 계산이지요.

대체적인 분위기가 감독이 지시를 하면 배우들은 그냥 수동적으로 움직였어요. 그건 동양 배우나 백인 배우 할 것 없이 거의가 같은 경우였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살아 남으려면 좀 더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했지요. 특히 배우는 배역을 따내야 하는데 중요한 역할들은 전부 백인 차지이다 보니까 이런 면에선 자기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아요?

그래서 1965년 동양인 배우 여섯 명이 주축이 되어서 EAST-WEST Players Theatre Company를 만들었어요. 차츰 작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꽤 유명한 극단이 되었고 지금가지 38년을 이어오면서 자체 극장까지 소유한 극단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면 인종 차별을 깬 사례에 해당이 되겠지요.

최근에 007시리즈에 한국인 배우 릭윤이 조연급으로 캐스팅 되어 화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007시리즈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 출연하셨지요?

지금 동양인 배우가 이런 인기 시리즈에 발탁되는 경우는 사실 저희 같은 일 세대들의 노력이 매우 컸다고 봅니다. 잘 아시다시피 John Steinbeck의 <분노의 포도>를 보면 제가 Intelligent Assistant로 나옵니다. 그런데 1950년에 만들어진 제임스딘이 나왔던 작품을 보면 이 배역이 모호하게 처리가 되어 있어요.

그런데 10년이 흐르면서 원래의 배역이 다시 되살아난 경우로 볼 수가 있습니다. 릭윤의 경우에는 개인의 노력도 크지만 그 전의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40년 동안 배우로서 활동하시면서 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들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여기에서 저는 배우라는 개념에 대해 한 번 되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한국에 오니까 영화배우, TV 탤런트, 연극배우, 성우 등으로 너무 분명히 구분이 되어 있어요. 배우는 그냥 배우일 뿐인데 말이에요. 이런 점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것이라 봅니다.

연극이야 늘 하는 것이었고, 영화는 <The Last Mountain>, <Yellow>, <Beverly Hills Ninja>, <Death Wish 4>, <The Final Countdown>, <The Man with Golden Gun> 등이 우리에게 비교적 알려진 작품일 거예요.

미국은 영화 말고도 Television Movie라고 미니 시리즈 형태가 있는데 ABC에서 방영한 <East of Eden> 그리고 NBC 미니시리즈로 나온 <Marco Polo> CBS에서 제작한 <The RED Spider>이 비교적 알려졌던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으로 <제시카의 추리극장>, <에덴의 동쪽>은 국내에 소개되었고, <쿵푸>의 경우는 이소룡으로 더 유명하니까 말할 것도 없고요.

저희가 말로만 듣던 배우들과도 많은 공연을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요?

같이 작품을 했었던 배우로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배우로는 얼마 전에 타계한 찰슨 브론슨, 그리고 로저 무어, 척 노리스 등이 알려졌을 것이에요. 지금도 그렇지만 대 배우들의 특징은 모두가 편안하게 연기를 한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에요. 생활이나 연기에 있어서나 말이죠.

그리고 브로드웨이에 입성해서 1979년에 남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 바로 <Pacific Overture>인데 이 작품을 할 때 코러스 scene이 있는데 여럿이 춤을 추다가 갑자기 관객석에 있는 잉글리드 버그만이 보이는 거예요. 한줄기 광채처럼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무대에서는 FOOT LIGHT가 비취기 때문에 눈이 부셔서 관객석이 잘 안 보이거든요. 그런데 그 찰나 3초나 되었을까 춤을 추다가 그만 멈추어 버린 일이 있어요. 그래서 앙상블을 놓치게 된 것이죠. 배우로서는 치명적인 실수인데 그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만난 얘기도 해야겠네요. 내 공연을 보러 와서 막이 내리고 같이 포옹을 했었는데 내 가슴 정도에 안길 정도로 아담했었는데, 눈이 투명한 코발트 톤이었어요. 그 때 새삼 느낀 점은 배우에게 눈이 얼마나 중요하고 매력적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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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서 외국 배우들과 함께 할리우드에서 연기하는 모습

여기에 오셔서 연극들은 보셨는지요? 특별히 인상에 남는다거나 감상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연극은 자주 보는 편이에요. 특히 우리 제자들 공연은 만사 제쳐두고 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하나 재미있는 점은 팸플릿을 참 고급스럽게 잘 만들어 놓았어요. 작품 설명도 잘 해 놓고 그런데 그러한 점이 무대에 그대로 나타나지 않는 점은 아쉽습니다.

대단히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한국 연기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이건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이야기할 성질의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우선은 연기는 현장의 예술인데 여기에 대해 교육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생생하게 전달하는가는 잘 모르겠어요. 흔히들 무엇이든지 이론화가 되면 이미 늦어지거든요.

연기 교육은 실천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분야인데 한국의 연기 교육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지금 대학에서 연기 교육을 담당하는 분들을 보면 거의가 미국에서 Ph. D를 하신 분들인데 미국의 경우는 연기학교 입학에서부터 오디션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실제로 제가 알기로도 오디션을 통과하지 못한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작년에 제가 계명대학교 연극영화과를 맡아 커리큘럼을 짰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보고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거 연기 커리큘럼이네요’ 하더라고요. 아마 연극영화과이다 보니까 연극과 영화, 그리고 모든 부분을 충족시키고자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여기에서부터 근본적인 고민을 안고 있다고 생각해요.

커리큘럼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관심이자 고민인데 연기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우리의 풍토는 많은 개선점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종합예술학교 시스템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너무 대사 중심의 교육으로 이루어 져 있어요. 연기는 신체 훈련이 기본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테크닉적인 면에서 보면 Voice테크닉과 Body테크닉이 있는데 우리는 일단 대본부터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가령 예를 들면 몰리에르의 <수전노>를 올린다고 보면 미국의 경우는 처음부터 대본은 주지 않고 한 달 동안 몸에 익힐 때까지 18C 프랑스의 클래식 발레를 배웁니다. 이런 접근 방법에서 인물의 걸음걸이 동작을 익히면서 성격을 부여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훈련을 거치면서 작품에 들어갈 때에 더 명확하고도 효율적인 작품이 되는 것을 경험으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기자에 대한 신분이 보장되어 있지 않는 부분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영화배우 조합’이 있고 ‘연극배우 조합’의 경우도 상당히 오랜 기간 전통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일례를 든다면 보험이나 신분에 대한 보장은 물론이고 90분 노동에 15분 휴식은 기본이고 세부적인 조항에 이르기까지 배우를 많이 배려합니다.

작년에 <뮬란>의 출연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은 녹음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거든요. 이에 비해 우리는 배우에 대한 신분이나 환경들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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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넘버가 007인, 제임스 본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007시리즈>에서

배우에게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정의 내리실 수 있으신지요?

저는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집념(執念)이라고 봅니다. 저의 경험으로도 배우의 90%는 집념, 그리고 운이 5%, 우리가 이야기하는 끼나 재능은 2∼3%밖에 안 된다고 봅니다. 그 2∼3%에 해당되는 재능을 개발해주는 것이 선생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둔하게 밀고 나가는 힘이 무엇보다도 요구되어 진다고 봅니다.

저는 어렵게 배우 생활을 해서 그런지 무엇보다도 제자들에 대한 욕심이 많습니다. 아직 연륜은 얼마 안 되었지만 우리 졸업생들이 기존 제도에 흡수되지 않고 자기의 소신을 펼쳤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테니스 선수가 포핸드도 쓰고 백핸드도 잘 써야 하듯이 우리 제자들이 어느 분야에서건 활용할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배우가 연기할 때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요?

저는 동서양을 겪으면서 하나 느낀 점이 있는데 어디에서건 삶의 진실은 같다는 거죠. 배우는 이 삶의 진실을 포착해 내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순간을 포착해서 영원화 할 수 있는 힘이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작품을 하실 때 배역을 정하는 기준이 있으신지요?

작품을 할 때 돈을 따지지는 않는 편입니다. 제가 학생들한테 농담조로 말하는 것이 돈을 벌려면 은행 갱이 되면 된다고 합니다. 작품 선정의 첫 번째 원칙은 인간으로서 자랑스럽지 않는 역할은 안 했습니다. 이건 역할이 선한 역이고 악한 역의 구분은 아닙니다.

두 번째로는 한국 사람으로 제대로 보여지지 않는 역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의 경우는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안 한다고 해서 그 역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역할을 맡게 되면 비록 악역이지만 우리의 긍지가 담겨 있는 부끄럽지 않는 역할들을 창조하려고 노력했어요.

공연에 오르실 때 습관이 있으신지요?

특별한 습관은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징크스로 굳어지다 보면 좀 날카로워지는 법이니까. 그런데 습관이라기보다는 공연 두 시간 전에는 반드시 극장에 가서 분장실에 가 있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정리가 되거든요. 미리 준비를 하고 있으면 보통 다른 배우들은 7시 30분쯤에 출근을 합니다.

할리우드에서 40년을 활동하시면서 2002년 KBS 해외 동포상을 받으셨고 재작년에야 귀국을 하셨는데요?

저는 뒤늦게 코리안 드림을 이룬 사람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추세를 본다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나가는 사람도 많은데 저는 우리나라를 참 많이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편한 삶을 바란다면 미국이 훨씬 더 좋죠. 하지만 마음 안에는 언젠가는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항상 했었어요. 그래서 제 별명이 ‘Next Year’ 이었어요. 내년에는 가야지 하면서 이렇게 세월이 흘렀어요. 늦어진 원인을 생각해보니까 우선은 [EAST-WEST Players Theatre Company]라는 단체를 거느리고 있었고, 그리고 좀 더 배워서 가자 이런 생각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나 제 아내나 언젠가는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해만 해도 <Madam Butterfly>를 쓴 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플라우어 드럼송>이라는 작품이 예정이 되어 있었는데 작품 규모나 크기를 보아서라도 몇 년은 족히 걸리겠다 싶어요. 그래서 결단을 내렸지요.

마지막으로 연기를 지망하는 후학들에게 들려주고 싶으신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집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우의 타고난 재능은 정말로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보잘것없는 저도 일개의 동양인으로 경쟁이 치열한 HOLLYWOOD에서 40년을 버텼습니다. 모든 것이 낯선 환경 속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금방 주저앉는다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자세가 아닌가요? 그래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근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로토프스키(Jerry Grotowsky)는 배우를 ‘성스러운 그릇’으로 표현했습니다.

삶의 진실을 구하는 모습, 바로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가는 집념(執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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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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