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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무대 위의 열정, 혹은 계산된 냉정함>

엑터타임즈 2025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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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음은 때로는 신선한 떨림을 동반한다.

가을이 오는 이른 아침, 남산의 언덕에서 만난 선생님의 모습은 무대 위에서 본 그것과는 분명 달라 보였다. 30센티 남짓의 거리에서 마주본 그녀의 모습은 연한 아침 공기가 주는 평화로움 만큼이나 맑고 투명했다. 로터리클럽 주회를 마치고 나온 선생과 마주 앉았다.

1942년 3월에 태어난 박정자는 진명여고 졸업 후 이화여대 신문학과에 입학했지만 동아방송 성우 생활을 시작하면서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다. 이후 연출가 김정옥 선생을 만나 극단 [자유]의 창단 동인으로 연극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녀가 출연한 연극은 무려 130여 편이나 되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은 <피의 결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위기의 여자>, <19 그리고 80> 등이 있다.
1970년, 1972년, 1986년, 1990년 등 무려 네 차례에 걸쳐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하였으며, 1988년에는 한국연극예술상, 1996년에는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MBC 문화방송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우리나라 연극계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 등 네 권의 책을 발간하기도 한 박정자는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이사와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 그리고 (재)한국연극인 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연극인들의 복지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선생님 유난히 피부가 맑아 보이십니다. 요즈음 근황은 어떠하신지요?

피부는 특별히 타고난 거예요. 목소리와 함께 어머님이 주신 거죠. 얼마 전 딸아이 연수, 그리고 연출가 한태숙씨와 함께 프랑스엘 다녀왔어요. 아비뇽 연극제도 볼 겸 해서 갔었는데 올해는 모든 축제가 취소되어서 참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극단 산울림에서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공연을 위한 연습이 있는데 아직 딸 역할은 캐스팅이 안 되었어요. 그리고 <19그리고 80>을 끝내고 지방공연 겸 여행도 하면서 보냈습니다. 전주에 갔을 때는 한옥마을에서 잤었는데 불편은 했어도 창호지 너머로 달빛이 너무 고와 참 인상에 남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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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리고 80>에서

80세 할머니 모드 역을 맡았다

저도 그 작품을 보면서 선생님께서 예전보다 더 유연하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체력 관리를 하시는 비결 같은 것이라도 있는지요?

특별한 건 정말로 없어요. 지금은 왼쪽 어깨가 아파서 통증을 완화하는 봉독 치료를 받고 있는데 무슨 오십견이라고 하나요?

그럼 보통 공연이 없을 때는 어떻게 지내십니까?

공연이 오래 계속될 땐 힘들지만 그래도 할 일은 다 하는데 공연이 없을 땐 한없이 늘어져요. 어떨 때는 거울보기도 겁날 때가 있으니까. 주로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는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아침에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게 타이릅니다.

“말 많이 하지 않기. 그리고 듣기만 하기.”

그리고 잠자는 걸 참 좋아해요. 내 별명이 뭔지 아세요? ‘착한 애기’예요. 지방 공연을 가거나 여행을 가도 잠자리나 먹는 것에는 불만이 없어요. 잠자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순한 편이죠. 남들은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데 난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내가 너무 무딘 건가?

그리고 우리 강아지 ‘봄’이 하고 뒹굴뒹굴하고 노는 것. 분명히 가족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개들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요.

어렸을 적의 성장 배경에 관해 말씀해 주십시오.

1942년 인천에서 1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지요. 일찍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셔서 37세에 혼자된 어머니는 다섯 남매를 키우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하셨어요. 돈암초등학교 2학년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었고 강화도에서 전쟁을 피한 우리 가족은 다시 1.4후퇴 때 미군 군함에 올라타 보름을 바다 위에서 흔들린 끝에 제주도에 정착을 했지요. 지금도 제주도가 내 고향이라고 착각을 할 때가 있어요.

어머니는 손재주가 좋아 한복 짓는 솜씨가 일품이었고 자수도 잘 놓으셨지요. 전쟁 중 삯바느질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느라 어머니는 늘 재봉틀 앞에 앉아 있었고 그 자태만은 아직도 고운 느낌으로 남아 있어요. 내 독특한 목소리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거예요. 어머니는 감성 또한 풍부하셔서 이야기를 할 때면 각각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목소리를 구사하곤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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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의 포스터. 김수현, 정동환, 서주희, 박정자

(좌로부터 시계방향)

91년에는 문화부에서 제정한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 상’을 받으셨는데 시상식 날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연옥색 치마저고리에 살짝 기름을 바른 백발이 얼마나 단아해 보였던지 가슴이 막 떨렸습니다. 세상에 어느 미인이 우리 어머니 만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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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의 한 컷트

데뷔를 하시게 된 동기는요?

오빠가 󰡔신협󰡕 멤버였는데 어릴 때부터 오빠를 따라 다니면서 동양극장에서 <마의 태자>를 인천에서는 <처용의 노래>를 보았던 기억이 생생해요.

오빠의 도시락을 가져다 준다는 핑계로 무대가 휭휭 돌아가는 <춘향전>을 열 두 번이나 보았고 <마의 태자>에서 공주의 마지막 대사는 힘 안들이고 줄줄 외울 정도였으니까.

당시 최고의 배우였었던 김동원, 최은희 선생님은 어린 나에게 절대적인 우상으로 무대 위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을 정도였었지요.

대학 시절 김동원 선생님 내외분이 프랑스 발레단을 보기 위해 이화여대 강당에 오셨을 때 처음으로 사인을 받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아직도 마음 한구석엔 선생님의 무대 위에서의 모습이 그리울 만큼 생생합니다.

이화대학 2학년 때 문리대 연극반에서 <페드라>를 하였었는데 그 때 막 이태리에서 유학을 마치고 양동군 선생께서 귀국을 해서 연출을 맡으셨는데 전 그 때 왕비인 페드라가 아니라 시녀인 파노트 역을 맡았지요. 대사가 16마디밖에 안 되는 역을 맡아 처음에는 풀이 죽어 있었는데 선배의 연기가 훌륭해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런데 맨 마지막 장면에서 왕비가 독약을 먹고 쓰러질 때 순발력 있게 무릎을 꿇고 왕비를 받아야만 했었는데 장작개비처럼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번번이 선생님께 꾸중 듣던 기억이 납니다.

경력란을 보면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중퇴로 나와 있는데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으셨는지요?

1963년에 동아방송국이 개국하면서 전속 성우를 모집을 할 때 갑자기 방송국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응시했었는데 덜컥 합격이 되었어요.

경쟁률이 150대 1이었는데, 그러나 당시 이화여대는 학생의 방송 출연을 금지하고 있었고, 며칠 밤을 새면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자퇴를 해야만 했었지요.

그 때의 입사 동기로는 사미자, 전원주, 김무생, 박웅, 김수희, 장미자 씨가 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방송국 생활을 하면서 전혀 후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한동안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데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가서 당황하는 꿈을 꾸면서 가위에 눌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빨리 시작한 것은 궁극적으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몇 년 전에는 이화여대 동문 공연에도 참여를 했었습니다.

방송을 통해서 체득한 발성법이나 호흡법은 연기 생활을 하는데 절대적인 도움을 주었죠.

연극 생활 중 상당 부분을 극단 [자유]에 오래 몸담으셨지요?

1966년부터 선배 나옥주 씨의 추천과 대학극에서 만났던 김정옥 선생과의 인연으로 극단 󰡔자유󰡕의 창단 멤버가 되었지요. 창단 동인으로는 최불암, 김혜자, 함현진, 최지숙, 문오장, 김용림, 윤소정 씨가 있었어요. 가르시아 로르카의 <피의 결혼>에서 어머니 역을 맡았고, 최인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에서도 온달의 어머니였어요. 20, 30대에는 늘 얼굴에 주름을 그리고 머리엔 흰 칠 하고 이미 노년을 난 그 때 이미 다 살았었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인데 마지막 장면에서 온달도 며느리인 평강공주도 죽었는데 이를 모르는 노모는 눈 내리는 텅 빈 무대에 홀로 남아 독백합니다.

“눈이 오는군… 오늘은… 산에서… 자는 날도 아닌데… 왜… 이렇게 늦는구…?”

비록 주역을 떠받드는 조연이었지만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라는 평단의 칭찬을 듣기도 했습니다. 내 연극 인생 중 젊은 시절은 극단 [자유]와 모든 걸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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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남한산성 남문에서 열린 ‘제2회 성남국제무용제’ 개막 전야제 행사에서

연극을 하시면서 연기 교육에 대해서는 어떠한 생각을 하시는지요?

개인적으로 연기 교육에서는 체험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연극이나 무용 등 공연예술은 무대 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목격하는 가운데 훈련되고 체득되는 부분들이 반드시 있거든요.

그것은 훈련이나 워크숍 이전의 문제라고 봐요. 배우가 되려는 사람은 기술 이전에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감수성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이런 비유가 맞을지 모르지만 전 연극배우를 운동선수에 비유를 하기도 하죠. 잠시라도 쉬면 움직임이 둔해지고 피부에 긴장을 잃는, 그 중에서도 권투선수에 특히 가깝죠. 링 위에서 먼저 상대를 치지 않으면 자기의 눈이나 얼굴이 찢어질 것은 자명하죠.

그러한 순간적인 처절함이 무대 위에서도 재현이 되는 것이죠.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엔 나 등의 뮤지컬에도 출연을 하시고요, 아마 레코드도 내셨지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어요. 어릴 때는 변소에 쭈그려 앉아서도 노래를 불렀으니까. 그럴 때면 언니들은 나를 놀리곤 했지요. 친구들과 함께 모여 앉아 놀 때면 “박정자, 노래해” 하면서 노래를 시켰어요. 그래서 어느덧 박정자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위기의 여자> 공연이 끝났을 때 우연히 남편의 후배를 만났는데 그가 대뜸 “형수님 제가 녹음실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반주 넣어 줄 테니 노래하세요, 노래 좋아 하시잖아요?” 하고 제의를 하기에 우선은 그 발상이 재미있었고 그러다가 덜컥 저지르게 된 것이죠.

그래서 중년 여성들의 취향을 떠올려 보고 프레베르의 <아침식사>, 칼릴 지브란의 <내 영혼이 나에게 충고했네>, 문희자의 <당신과 나>, 헤르만헷세의 <안개 속에서>와 같은 시를 골랐고, 고은정 선배가 노랫말을 써주고 또 작곡을 의뢰하고 해서 판의 제목을 「아직은 마흔 네 살」로 정했고, 맨 마지막은 <위기의 여자>에 나오는 독백 장면도 실었었지요. 작업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었는데 또 한 번의 관문이 남아 있었어요.

주변에서 책이 나와도 출판기념회를 하는데 하물며 음반이 나오는데 어찌 그냥 있을 수 있겠느냐 면서 종용을 하는 거예요. 그러기에 아예 체면이고 염치고 다 내던지고 “까짓거 저지른 김에 저지르지, 뭐”하는 생각으로 동숭아트센터 무대를 하루 빌렸어요.

무대 위에는 겨울나무 한 그루를 세우고 바람도 날리고 낙엽도 날리고 그리고 함박눈도 펑펑 날리게 했지요. 훨씬 후에 KBS 빅쇼에까지 방송된 것을 보면 ‘박정자, 참 뻔뻔하고 배짱 한 번 좋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무슨 일이든 내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할 땐 우선 망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자신의 무능함에 후회만 남겠지요. 뒷일은 생각 안 하고 저지른 일인데 지금 봐도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배우들의 직업병이랄까요, 대사를 잊어버린다든지 하는 악몽을 때때로 꾸시는지요?

당연히 꾸지요. 실제로 <테레사의 꿈>을 공연할 때 시어머니께서 돌아 가셨어요. 장례를 치르고 다시 무대에 올라갔었는데 4분의 1 즈음에서 콱 막혀버린 거예요. 네 시간 전부터 극장에 가서 미리 대본도 꼼꼼하게 살피고 막을 올렸는데…. 그건 대사를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뭔가가 얽힌 거였어요. 그 때는 죽고 싶다는 건 오히려 사치스럽다. 차라리 사라져 버리고 싶다. 연기처럼….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배우로서 가장 상처를 받는 순간이었죠.

커튼콜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그 날의 상황을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관객들은 다들 이해를 해 주시더라고요, 오히려 인간적인 배우 박정자를 보았다고 관객들은 따뜻한 위로의 박수를 보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대사들을 외우시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우선은 대본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의 첫 느낌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본에 나타난 활자뿐만 아니라 활자모양 행간에도 신경을 쓰죠.

이 순간은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하게 돼요. 예민해지다 보면 어느 새 대본의 활자가 머리에 입력이 되면서 어디에서 줄이 바뀌었지? 빨간 줄은 어디에서 그었더라? 리딩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외워지면서 블로킹에 들어가다 보면 구체적으로 머리에 입력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억력이 좋은 건 아니에요. 내 스스로가 생각해도 난 건망증이 심해요. 이만저만한 게 아니지요. 우리 집 전화번호가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대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외워야겠지요. 그러한 반복적인 강박 관념이 작용하는 거예요. 그런 나를 보고 우리 집 아이는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한다니까요….

대본을 받으면 제일 먼저 어떤 일을 하시는지요?

우선 작품에 매력을 갖게 되는 동기는 역시 작품 자체와 배역이죠. 그런 의미에서 작품의 첫 느낌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작품과 배역이 결정되면 그 역할을 어떤 빛깔로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합니다.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하얀색, 보라색, 선홍색 등등.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외형을 입혀 나가는데, 의상을 고를 때도 그렇고 하물며 신발에까지 매우 까다롭게 신경을 쓰지요. 작품과 인물에 따라 어떤 모양 어떤 색깔 어떤 질감의 구두를 신는가에 따라 그 인물의 성격이 다르게 표출이 되니까요. 그리고 구두 못지 않게 헤어스타일을 가지고도 많은 고민을 하는 편인데, 이러한 외적인 접근 방법은 작품 분석 못지 않게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임에 틀림없어요. 그래야만 성격이 확연하게 나타날 테니까요.

그리고 아주 미묘하지만 목소리에 과학적인 계산을 넣습니다. 난 수학도 과학도 싫어 하지만 목소리에 컬러 보이스를 분배할 때는 계산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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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에서

딸 서은경과. 이 변소장면은 그녀가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 방법이 연출가와 마찰을 빚는 적은 없으신지요?

그 동안 많은 연출가를 만났지만 일일이 지시하려 드는 연출가보다는 배우에게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연출가를 좋아해요. 유능한 연출가는 배우 자신을 믿어주고 배우 자신도 모르고 있는 재능을 발견해내고 이끌어 주는 연출가가 아닌가 해요.

또한 좋은 연출가는 작품을 꿰뚫는 미학적인 관통 선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겠지요. 김정옥, 임영웅 선생님 등 훌륭한 분들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배역 안에 빠질 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시는지요?

무엇이든 연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 경우 어떤 때는 아주 몰입할 때가 있고 혹은 내 뒤에 숨어서 나를 조종할 때가 있지요. 기본 톤은 열정적이지만 때로는 계산된 냉정함이랄까?

그래서 김정옥 선생의 경우 배우가 너무 배역에 동화되는 건 좋지 않다는 논리입니다. ‘이화-낯설게 거리 두기’ 그게 맞는 말일까? 작품에 따라서 그걸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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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낭독의 발견’에 출연해서 낭독을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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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형우 작가가 찍은 연극배우 박정자의 모습

공연에 몰입하다 보면 배역 안에 몰입이 되어서 내가 작중 인물인지 작중 인물이 나인지 하고 혼동이 되신 적은 없으신지요?

그거야 당연히 있지요. 특히 장기 공연을 하다 보면 더욱 그렇지요.

<굿나잇 마더> 때는 첫 리딩을 할 때부터 펑펑 눈물을 흘렸어요. 공연 몇 달 동안 매일 울었지요. 가슴으로 울지 않고 테크닉으로 연기한다는 것은 용서하지 못하니까. 그 작품을 하면서 실제로 내가 얼마나 늙어 있었는지 매일 거울을 보면서 수심으로 가득한 얼굴이며 어깨와 허리가 구부정하니 굽어 있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슷한 예로 손숙도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를 연기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휠체어에 앉아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시는 환자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배우가 얼마나 전이가 빠른 족속인지 모르겠어요.

 

공연에 오르기 전에 독특한 습관이나 버릇이 있다면?

가끔 기도해요. 관객들의 시선을 어떻게 감당할까? 정말 찌꺼기 하나 남겨 두지 않고 나의 모든 걸 어떻게 다 보여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공연할 때, 특히 장기 공연을 할 때는 분장실에다 아예 살림을 차려요. 우편물까지 극장으로 배달되어 올 정도이니까. 이리 저리 달력도 걸어 놓고 사진도 붙여 놓지요. 그 곳은 고통스러운 현장이지만 안식을 주기도 합니다. 긴장이 되지만 너무 행복한 장소 그게 바로 분장실이에요.

체험적 연기론을 연재하면서 드는 생각인데요, 전 이것이 선배들이 후배에게 주는 일종의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배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열정을 잃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절대로, 절대로요…. 열정은 배우로 살아가게 만드는 불씨라고 생각합니다. 연극은 전쟁이니까 그걸 잊으면 우린 전쟁에서 싸우기 전에 이미 패배해 버리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대본을 받은 다음에 되도록 많이 소리를 내고 움직여 보아야 한다는 것. 이건 머리로 계산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이리저리 동선을 만들어 보고 다양하게 소리를 내어 봐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머리가 나쁠수록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빈 구석이 많을수록 채워야 할 부분이 많은 법이니까.

앞으로의 계획이랄까, 소망이 있으시면요?

아주 평범할지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이 결혼을 하면 어떤 상대와 하게 될까? 그리고 그 아이들이 애를 낳는다면 어떤 아이들이 태어날까? 아마 내가 할머니가 되어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과 같이 봄 햇살을 맞으며 산보하는 기쁨?

그리고 <19∼80>을 해마다 어떻게 공연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들. 극 중 모드의 나이가 80인데 앞으로 나도 늙어가면서 80이 될 때까지 이 작품을 할 생각입니다. 매년 상대 배역도 바꾸고 그리고 연출가도 한 다섯 사람쯤으로 해서 색다르게 만들고 싶습니다.

생각컨데 극 중에 물구나무서기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일흔이 넘어도 가능할까? 글쎄 그건 나도 장담 못하겠어요. 그래도 관객과 함께 나이 먹으며 행복하게 같이 늙어 가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아름다움을 유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80세의 모드를 만나기 위해 매년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라이벌로 생각하는 그를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윤석화의 글로써 맺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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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연극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에서

“그는 어린아이 같다. 하지만 그는 어른으로서도 매사가 분명하고 약속을 잘 지킨다. 약속에 관하여 최선을 다 한다. 무대 위에서든 밖에서든. 그리고 그는 부지런하다.(본인은 아니라고 우긴다.) 그것은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왜냐하면 나는 따라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따라가기 힘들지만 죽어라 하고 따라다닌다. 왜냐하면 그 부지런함 속에 숨어있는 ‘고독’을 눈치챘거니와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까닭이다.”

-연극배우 박정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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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27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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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26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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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19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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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06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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