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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단정한 영국 신사풍의 배우>

엑터타임즈 2025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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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기록을 갱신하듯 얼어붙은 영하의 기온은 거리를 꽁꽁 얼어붙게 할 만큼 추웠다.

이러한 세밑 풍경에도 정미소(精美所) 3층 연습실에는 새해를 준비하기 위한 공연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내년 1월 9일 날 시작하는 <19∼80>을 위해 모든 배우들이 모여 연습을 하고 있었다. 신부님으로 출연하시는 박웅 선생님은 예의 단정한 차림으로 연습의 중심에 서 계셨다. 연습 분위기는 따뜻했었고 테라스 한쪽 켠엔 세 송이의 해바라기 꽃이 화병에 담겨 피어 있었다.

1940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난 박웅은 유년 시절을 문경에서 보낸 후 고등학교는 부산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웠지만 영화에 재미를 들여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생이었던 그의 눈에 연극 <원술랑>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벽보가 눈에 띄었다. 곧바로 달려간 박웅은 이 연극에서 김춘추 장군 역을 맡아 부산에서 첫 공연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대학생 시절인 1963년에 동아방송 1기 성우 시험에 합격하여 성우 활동을 하면서 동료 성우들과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영화와 연극, TV를 통해 끊임없는 연기 생활을 이어오며, 1977년에는 어느 노교수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1991년 이후 8년에 걸쳐 한국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바로 이어서 1998년에는 제 19대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2009년에는 대학로 문화발전위원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대학로 연극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다.

연말에 많이 바쁘시죠? 요즈음의 근황을 말씀해 주십시오.

뭐 다른 직종의 사람들처럼 연말 결산이니 그런 것보다는 그냥 사는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대략 아침 6시 즈음 일어나서 부부 동반으로 산책을 합니다. 집 근처 수유동 북한산 자락을 산보하는데 대략 30분 정도 걸립니다.

4.19기념 공원에 있다 보면 모이는 멤버가 대략 많으면 7∼8명 정도가 되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만나 근처에 있는 ‘도투루’라는 커피숍에서 차를 마십니다.

하도 만나다 보니 이제는 가벼운 샌드위치나 음식들을 준비해서 같이 나누어 먹으면서 아침을 해결합니다. 간혹 해장국을 먹기도 하구요 그러다 보면 아침 시간이 아주 유익하게 갑니다. 운동뿐만이 아니라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 수가 있고 만남의 폭도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연극을 하다 보면 만남의 폭이 제한이 되어 있는데 이러한 시간은 살아가는 재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집에 오면 아홉 시 즈음이 됩니다.

간단히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이메일을 체크하기도 하고 뉴스를 듣기도 하고 그리고 연습실로 향하면 일종의 출근이라고나 할까요? 연습 시간은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이것이 저한테는 일이니까요.

선생님 연세에 체구가 참 당당하십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마 40이 넘었을 때부터였을 거예요. 슬슬 배가 불러오기 시작을 해요. 그 때부터 헬스클럽을 끊어서 다녔습니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어 버렸네요. 전 배우는 몸이 참 중요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몸 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일 년치 정기권을 끊어 놓으면 가는 건 한 절반 즈음이 될까요? 방송 일까지 겹치거나 지방공연이다 하면 못 가게 되는 경우가 많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래도 의식적으로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배우는 긴장을 먹고사는 직업이기 때문에 정기적인 몸 관리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같이 운동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몸을 만들면서 열심히 운동하는 것을 봅니다. 그렇게까지는 못 해도 정해진 코스를 따라서 하다 보면 몸도 건강해 지고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긴장감을 잃지 않아서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20년 동안 꾸준한 노력들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는 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내셨고, 배우협회도 근 10년 이상을 관계해 오셨는데요?

1991년 초예요. 그 때 연극배우로서 10년 이상을 꾸준히 한 사람을 모아 보니까 대략 100명 정도가 되는 거예요. 배우들이 각각 장르 별로 모임들이 조직화되어 있는데 연극 쪽은 그런 단체가 없었어요. TV는 탤런트 노조가 있었고, 영화 배우협회, 그리고 성우들도 협회가 있었고, 개그맨들도 희극인 협회가 있었는데 연극배우는 그런 개념이 약했었습니다.

연극협회 내의 연기분과는 있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분과였고 연기자들의 친목과 권익을 위한 기구체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1991년 4월 15일 문예진흥원 강당에서 창립총회를 하게 된 것이었죠.

협회는 창립 취지문을 통해서 ‘연극배우의 열악한 조건을 타개하고 스스로 연극 환경을 개선시킬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노력을 강구하겠다’고 다짐하고 배우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격은 3년 이상 지속적으로 연극 활동을 한 자로 정하고 총 9장 31조의 정관을 만들어 협회를 조직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나이가 많아 초대 회장을 한 것이 그대로 1대, 2대, 3대까지 이어오게 된 것이죠. 그러다가 연극협회 이사장이 되면서 잔여 임기를 박상규 씨가 물려받게 되었던 것이죠.

당시에는 극단이 연출가나 기획자가 대표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연기자들이 대표를 하는 단체도 많고, 그 10년의 기간 동안 배우들의 위상과 권익이 많이 신장된 것을 봅니다. 물론 어떤 물리적인 힘이 있어 강제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처지를 호소할 수 있는 기구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느껴집니다.

1997년 배우협회 회장을 하면서 연극협회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그 때가 막 IMF가 터졌을 때라 어느 분야보다도 연극계가 어려울 때였어요. 그래도 정부로부터 지원받기로 한 공연예술기금 100억을 지원받는 데 온 힘을 쏟았고, 재직하면서 2억이었던 사랑티켓의 규모를 10억까지 늘렸던 것하며, 바탕골소극장과 화수회관 연습실을 연극협회 직속으로 인수한 것하며, 연극의 교과목 채택을 위한 기초적인 초석을 다진 것 등 소리나지 않게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였다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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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연극 <엄마를 부탁해>에서 아버지 역으로,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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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원작의 국민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

살아오신 성장 배경을 말씀해 주십시오.

1940년 태어난 곳은 경북 문경새재의 작은 마을이었어요.

초등학교는 거기서 다녔고 육이오 사변이 나고 얼마 후에 부산으로 이사를 해서 거기서 중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15세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고등학교는 건국상업고등학교라는 실업계학교를 다녔는데,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전형적인 저희 세대의 삶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빗나갈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남들에게는 절대로 가난한 티를 내지 않았어요. 대신 그 때 탈출구로 삼은 것이 영화였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랑은 비를 타고>, <쿠오바디스> 등의 영화를 보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군요. 더욱이 신문 광고에 새로운 영화 광고가 나면 마음이 온통 그 쪽으로 집중이 되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영화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지금처럼 많은 문화적인 시설이 없었을 때이니까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유일한 문화적인 도피처는 영화나 독서 정도가 아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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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엄마를 부탁해>의 프레스 리허설 중

그럼 연극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지게 되었는지요?

고등학교 시절 벽보가 붙었어요. <원술랑>이라는 작품 공고가 났는데 이 연극에 참여를 할 사람을 모집을 한다고 해요. 그래서 게시판을 보고 연극부를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맡은 역할이 김춘추 장군이었고, 부산 도청 앞 3.1극장에서 공연을 올렸어요.

그렇게 해서 연극이란 것을 접할 수가 있었고, 대학은 지금은 없어진 부산 연세실업초급대학 영문학과를 다녔지요. 어느 날 성우 모집 광고를 보는데 <원술랑>에 함께 출연하였던 친구가 성우가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나도 하고 싶다고 그랬더니 응시하라고 해서 시험을 보게 되었고 합격을 했었지요.

그리고 고등학교 연극반 때 지도선생이셨던 변형규 선생님이 부산 문화방송에 PD로 계셨는데 그렇게 해서 1961년도 부산 문화방송개국에 참여를 하게 되었지요.

그럼 서울로 오신 거는 그 다음 해인가요?

부산에서 잠시 동안이지만 있다 보니까 뭔지 모르게 답답함이랄까 갈증이 일었어요. 그 때 신문 광고에 동아방송에서 성우를 뽑는다는 광고를 보게 된 거예요. 그 당시는 라디오의 인기가 굉장한 시절이었거든요.

그래서 1962년 원서를 내고 서울로 왔다 갔다 하면서 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운이 좋게 합격이 되었어요. 그 당시의 동기로는 박정자, 사미자, 전원주, 김무생, 홍계일, 이완호, 김영식, 김수희, 장미자씨 등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연극에 입문하시게 된 시기는요?

동아방송에 입사하면서 새삼 느낀 것인데 다들 화려한 경력들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어요.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대개가 연극과 관계된 경우가 많았었지요. 연극영화과 출신이랄지 대학 때 연극을 하다 온 사람, 그리고 연극 현장에서 일하다 온 분 등 어떤 면에서 저 빼놓고는 대부분이 내로라하는 경력을 지닌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약간의 소외감도 느꼈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제가 지방 출신이다 보니까 경상도 사투리가 많이 배어 있었어요. 성우 또한 목소리로만 연기하는 얼굴 없는 배우이다 보니까 쟁쟁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저의 억양이나 어투가 많이 노출이 되었지요. 한동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부산에서 일할 때에도 표준말을 구사할 수 있었고 특별히 문제를 느끼지는 못 했었지요. 그런데 역할의 비중이 커진다든지, 아니면 섬세한 연기가 필요한 시점에는 점점 힘들어 지기 시작하더군요. 억양도 문제였지만 발음 하나하나가 어려웠습니다.

대본이 나와서 남들은 책 읽기를 끝내고 인물 분석에 들어가 있을 때 저는 발음이나 억양을 가지고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고통스러웠지만 노력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지요. 한동안은 심한 고민에 사로잡히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주위를 둘러보니까 부산 출신으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선배들을 보았습니다.

전운 씨 하고 송재호 씨가 그런 경우인데 그들을 보면서 노력하면 안 될 것도 없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무조건 따라 하는 훈련을 계속 반복하였습니다. 흔히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연기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더군요.

어느 언어학자가 ‘근본적으로 말은 10세 이전에 결정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그 지역 말은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다만 입 모양새를 정확히 하려고 하고 발음을 정확하게 한다든지 억양을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을 하면 어느 정도 사투리에 대한 부분들은 극복이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완전히는 힘들어도 말이죠.

초기에는 돌아오는 역할이 적어서 교육을 받고 나면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동료들이 남는 시간 그냥 보낼 것이 아니라 같이 모여서 연극을 하자고 제안을 해서 ‘동우극회’라 이름 짓고 모두들 의기투합해서 연극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저희들 신분이 촉탁사원이라 아무리 방과 후이지만 회사의 승낙을 얻어야 했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상급자인 최창봉 씨께 건의를 하니까 의외로 쉽게 허락을 해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2기인 조명남, 김을동, 전윤희 등이 가세를 하게 되고 제가 회장이 되어서 동아방송 전속으로 있는 5년 동안 8편의 연극을 올렸습니다. YMCA강당에서 무료공연으로 하기도 했고, 이근삼 선생께서는 새 작품인 <동물원의 호박꽃>을 주셔서 초연으로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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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홉의 신작 <숲귀신>에서

극단 [자유]의 이미지가 강하십니다. [자유]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처음에는 안평선 씨가 있는 󰡔제작극회󰡕 소속이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자유의 공연에 객원으로 출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인연이 되어 자유의 식구가 되었지요. 극단 󰡔자유󰡕는 일종의 동인제 시스템이었는데 자기의 할 일을 따로 갖고 있으면서 연극할 때 모이는 방식이 제게는 잘 맞았어요. 그래서 틈틈이 방송이며 TV며 영화에도 출연을 할 수가 있었으니까요.

자신의 대표작을 꼽아 주십시오.

먼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꼽을 수가 있겠네요. 1977년 동아 연극상 남우주연상도 이 작품으로 수상을 했으니까. 어느 노교수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작품이 부조리 작품이라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리고 술 취한 상태에서 내내 연기를 하다 보니까 어느 것이 제 상태인지를 몰랐지요.

상대역으로는 지금 <선셑대로>를 공연하고 있는 김금지 씨가 나왔는데 상대방의 호흡을 느끼면서 공연하였던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자유󰡕의 레퍼토리가 대부분인데 새로운 연극의 틀을 제시한 <무엇이 될고 하니>를 비롯하여 집단창작 형태의 공연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집단 창작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요?

<무엇이 될고 하니>가 초연된 것은 1978년 가을이었어요. 자유의 작품이 처음에는 구라파의 번역극이었고, 그 중에서도 이오네스코, 아라발, 베케트의 부조리극이나 코메디 종류의 작품이 많았죠. 카페 떼아트르의 공간 개념도 여기에서 나왔었고요.

그리고 나서 우리 것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작품이 바로 <무엇이 될고 하니>였어요.

그런데 ‘과거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일 뿐 완벽한 재현은 있을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라는 생각이 연출가이신 김정옥 선생님의 지론이었어요. 그래서 과거의 이야기를 오늘의 관점에서 해체하고 새로 창조하는 작업을 우리는 집단 창작이라고 했었고, 그것을 몽타주(Montage) 기법으로 만들었지요.

이러한 방법은 사실 배우들에게 완벽한 자유를 주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 대신 배우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예를 들면 <동리자전>을 했었을 때 장터 신에서 저마다 장기자랑을 하는 대목이 문제였어요. 권병길 씨와 밀양백중놀이에 나오는 병신춤을 비디오로 보고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도 그걸 막상 하려니까 처음에는 어색했어요.

그러다가 차츰 에피소드를 붙이게 되고 그것이 하나의 재미있는 장면으로 연결되다 보니까 극에 활력을 불어넣게 되더라고요. 이러한 것들이 쌓여가다 보니까 배우로서는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작업은 연기자로서 많은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화나 TV에서는 이러한 획기적인 변신이 어려울뿐더러 하고 싶어도 배역 자체가 오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자유에서의 집단 창조는 배우로서의 완벽한 변신이 가능한 기회라고 여겨졌습니다. 아마 자유의 배우들이 어딜 가나 인정받는 것은 이러한 훈련 방법론이 몸에 배어 있는 결과라 느껴집니다.

<무엇이 될고 하니>의 성공에 힘입어 일련의 이러한 작품들이 만들어 졌는데, <달맞이 꽃>, <피의 결혼>, <바람 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이름 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수탉이 안 울면 암탉이라도>,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 공연 등이 이러한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여겨집니다.

연기자로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면?

연기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소양이 중요하다 여겨집니다. 그리고나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본기와 그 다음에는 자신의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연기자는 끊임없는 변신을 요구받기 때문에 시간이 있을 때 한 가지라도 더 배워 두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인간에 대한 탐구가 중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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