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황제다. 고독하게 살아라. 너의 자유로운 혼이 가고 싶은 대로 너의 자유로운 길을 가라. 너의 소중한 생각의 열매들을 실현하라. 그리고 너의 고귀한 행동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말아라. 보상은 바로 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너는 네 작품에 만족하는가? 의욕 많은 예술가여!”
-푸쉬킨
김지숙은 1956년 10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77년 극단 현대에 입단하면서 연극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녀는 수많은 연극에 출연하였지만, 그녀의 대표작이고 할 수 있는 모노드라마 <로젤>은 1990년 12월 시작되어 1998년 11월까지 2,300회에 걸쳐 8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진기록을 세운 역사적인 모노드라마로 기록되어 있다.
1993년 ‘2000년대를 이끌어갈 예술인’으로 선정되었으며, 역시 이 해에 동아 연극상을 받았고, 1986년과 1987년에는 연이어 관객이 뽑은 최고의 연극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후 1984년에는 영화과 연극 두 부문에서 대종상 신인연기상과 백상대상 신인상을 연속 수상을 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연극사랑은 남달라, 2000년부터 3년에 걸쳐 연극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돌면서 <로젤>, <뜨거운 바다> 등을 무료 순회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김지숙은 영화, 연극에서의 연기뿐 아니라 연극 연출, 각색 및 번안, 서적 출간 등 다방면에서 그녀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사회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각종 단체에서 문화 특강을 하기도 하고, 성폭력 상담과 교도소 위문공연 등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기도 하였으며, 국내외적으로 많은 봉사활동에도 참여하였다. 김지숙은 현재 극단 전설 대표를 맡고 있다.
요즘 인기가 대단하던데 드라마 시청률이 많이 나오나요?
<시크릿 가든>이라고 SBS 주말에 방송되는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어요. 남녀의 영혼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맨틱 판타지물인데 저는 문연홍 역할을 맡고 있어요. 오스카(윤상현 粉)의 엄마로 나오고 있지요.
한류 스타 오스카의 모친답게 미모도 출중하고 끼도 많은 역할이죠. 늙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해서 하루에 바르는 화장품만도 열다섯 가지가 될 정도로 화려한 인물인데 맹한 구석도 있어요. 그렇지만 야망이 많은 인물이죠.
의 명품 조연들이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인기를 받고 있다고 인터넷에 많이 뜨고 있던데 드라마의 인기 요인은?
주연에만 맞춰져 있던 드라마의 스토리 라인이 골고루 포진해 있다는 것이 장점이죠. 보통 시청률이 25% 정도 나오는데 드라마로는 1위예요.
저를 포함해서 최고참이신 김성겸 선배님을 비롯해서 박준금, 성병숙, 이병준 등의 배우들이 떠받치고 있어서 연기도 안정이 되어있고 각자 개성이 강한데 이를 잘 살려내고 있어요. 재벌가의 황혼의 로맨스도 재미있고 저와 자매로 나오는 박준금 씨와의 허세와 자존심 대결도 색다른 볼거리를 자아내죠.
현빈 엄마로 나오는 박준금의 의상이 1억짜리인데 저도 협찬을 받고 있는 주얼리가 10억을 홋가하고 있는 것도 있어요. 명동 노보텔에 있는 샵에서 협찬을 해주시는데 이런 경쟁도 드라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감초 역할을 하죠.
그동안 소외되었던 중년들이 이야기 전개를 통해서 시청자들의 연령대가 많이 다양해진 것도 하나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죠.
이메일 아이디가 ‘iamrosel’일 정도로 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데요?
지난 1990년부터 공연했고 5년 전에 ‘여배우 시리즈’ 때 대략 130만이 넘는 관객이 다녀가셨네요. 독일 출신 작가 하롤트 뮐러가 쓴 이 작품은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여성이 어린 시절 친구를 찾아다니며 사랑의 상처, 결혼, 폭력, 정신병원 수용과 탈출 등 자신의 굴곡 많았던 삶을 관객에게 고백하듯이 들려주는 작품이에요. 우리 사회가 가부장적 남성 위주의 문화권이다 보니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남녀 불평등이 많잖아요. 그래서 소외받고 고통받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이 공감을 주는 것 같아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이야기하며 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접고 일을 해야만 했던 이야기, 그리고 그녀의 삶에 있어서 하나, 둘 등장하는 남자들의 이야기까지 한 여인의 인생 역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관객들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과 더불어 여성이 받아야 했던 불합리한 것들로 인해 삶이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1990년부터 공연을 이어온 연극 <로젤>에서 열연하는 모습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전야제에서 레드카펫을 밟고 있는 모습
이렇게 비극적인 인물을 연기하려면 고통스럽지 않나요?
제 성격이 하나에 몰입을 하면 그대로 몰입하는 타입이라 많이 힘들지요. 로젤이 제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그녀의 삶이 너무 힘들고 격정적이어서 공연할 때마다 고통스럽지요.
예전에는 빌딩을 날아다닐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지만 시간이 흘러 나이도 더해졌고 감정의 기복이 큰 인물 연기라 체력적으로 소모가 크기 때문에 매우 힘들어요. 가장 힘든 것은 맨 마지막에 가서야 깊은 울음으로 모든 것을 폭발시켜야 하기에 감정을 참는 일이 제일 어려워요.
이 작품을 하게 된 동기는?
1990년대 청소년 자살 문제로 온 사회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 작품을 가지고 이 아이들을 찾아다니자. 그래서 조그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3년 동안 200개가 넘는 학교를 찾아다닌 것이지요. 공연이 소문나면서 그 옆에 있는 학교에서도 초청이 오고 거절을 못해서 가고 했던 식이었지요.
강당이라도 있는 학교는 그나마 다행인데 어떤 학교는 강당이 없어서 시청각실에다 무대를 세우고 공연을 하고 난 후에는 뜯어내고, 트럭에 소품과 짐을 한 가득 싣고 마치 유랑극단처럼 공연을 했습니다. 마치 여전사 같았어요.
그때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 여자 서태지였어요. 거의 자비로 공연경비를 충당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우연히 최명길 씨 남편인 김한길 문화부장관이 이 이야기를 듣고 후원 업체를 알아주시기도 했지요.
이 공연의 매력은?
공연을 봤던 고교생에게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야겠다는 내용 등의 e-메일을 받은 것만 3천여 통이나 돼 배우로서 뿌듯함을 느낍니다. 관객과 주고받는 모노드라마의 특성상 자신의 얘기를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 심정에서 친구를 만난 상황이므로 공연을 본 관객이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나?’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 공연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모노드라마의 특성상 <로젤>은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시켜 그 관객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날 공연의 전체 분위기가 달라지는 작품인데, 매일매일이 색다르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고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는 것 같아 보람을 찾지요.
90년대에 이영란 교수의 과 더불어 모노드라마의 붐을 이룬 양대 축 같습니다. 최근에는 을 가지고 마케팅 연구라는 논문도 나왔어요?
마케팅이고 뭐고가 있나요? 관객들이 원하는데 정말 다급하게 다녔던 것 같습니다. 학교이고 시설이고 기관이고 막 다녔어요.
고등학교 순회공연을 다녀보니까 아이들이 많이 억압이 되어 있었어요. 이 작품을 보고 울면서 아이들이 변해가는 것을 보는데 어떻게 가만 있겠어요? 그래서인지 공연이 끝나고도 상담을 요청하는 글들이 많이 쇄도하고 그랬어요.
관객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년이 지나 친구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로젤>을 지켜봐 줬으면 합니다. 내용은 슬프면서도 재미있지요. 어떤 점에서 장기 공연이 가능한가를 확인하고 작품과 배우를 따뜻한 시선으로 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가 나왔는지?
어떻게 연극을 시작하셨지요?
대학시절 이반 교수님 권유로 극단 현대극장 4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춘기 열병을 남모르게 겪어야 했던 저는 대학 졸업할 때까지 자폐증에 가까울 정도로 말이 없고 소심한 성격이었어요. 그런 제게 하루는 대학 교양학부에 계셨던 이반 교수님께서 “너 졸업하면 뭐 할래?”하고 물으시기에 운명처럼 “연극이요”라는 답이 제게서 튀어나왔습니다.
그 당시 극단에는 윤문식, 최주봉, 유인촌 같은 쟁쟁한 선배님들과 에너지 넘치는 예쁜 여배우들이 막 쏟아져 나올 무렵이라 저는 더 위축되어 갔고 극단 생활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 영화 쪽에서 활동하시는 이춘연 오빠나 연출가인 김덕남 오빠는 “너 오늘 몇 마디 했니?”하면서 놀릴 정도였으니까요. 언젠가 최주봉 선배님께서 인터뷰 중에 “지숙이는 너무 얌전해서 절대 배우 못할 줄 알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을 정도로 저는 세상을 향해 너무 닫혀있었어요.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작품낭독회에서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을 낭송하고 있는 김지숙
<낭독의 발견>에 출연하고 진행자인 정지영 아나운서와
가족이 예체능 방면에서 유명하신데?
지원이는 권투를 잘했어요. 국제 대회 메달을 다 휩쓸었지요. 아쉬운 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 출전권을 얻었는데 그만 우리나라가 불참 선언을 하면서 경기에 못나간 것이지요. 82년에 바로 프로로 전향하더니 1985년에는 IBF 슈퍼밴텀급 챔피언까지 올랐어요. 그런데 정말로 특이한 것은 프로복서로서 최고의 절정기에 오른 뒤에 바로 은퇴를 해 버렸지요. 무패로 은퇴한 복싱선수가 그리 흔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김지운은 요즘 잘나가는 영화감독이죠. <놈놈놈>을 비롯해서 <조용한 가족>,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등의 작품을 만들었어요. 다들 개성이 강하죠.
IBF슈퍼밴텀급 챔피온이었던 동생 김지원
김지운 감독 영화에 출연할 계획은 없으신지요?
우리 가족은 예전부터 ‘자주 독립 국가’였어요. 각자 하는 일을 지켜봐 주고, 뒤에서 응원은 해 줘도 이래라 저래라 간섭은 절대 없어요. 지운이가 시나리오를 써들고 와 출연해 달라고 간청하면 몰라도 내가 먼저 ‘네 영화에 누나 좀 출연시켜 줘’라고 이야기할 생각은 없어요.
장애인 나눔연극제의 홍보대사도 맡으셨지요?
그렇죠. 바로 이 김은균의 지극스러운 권유로 인해 맡게 되었지요.(웃음) 그런데 전에도 저는 배우로서의 명성을 얻었으면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에 나누어야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전부터 청주교도소 여성 재소자 위문공연으로부터, 윤금이 공대위 자문위원, 명동성당 수녀원 기금마련 공연, 참여연대 기금공연, 정신대 할머니 쉼터, 동두천 장애인 수용시설, 임마누엘 무의탁 장애인의 집 등을 후원하였어요. 그리고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사랑의 문화봉사단창단멤버 등 사회 활동에서도 배우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발언을 해야 할 때는 눈치 보지 않고 외치곤 하지요. 선택 당하는 배우의 속성상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를 고수해야 하지만, 저는 언제나 당당하려 노력한답니다.
장애인 나눔연극제 홍보대사를 맡으면서
연출 작업도 하셨지요?
연출에 도전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열망 때문이었어요. 오랜 시간 수많은 관객과 무대에서 만났지만 자신만의 해석과 호흡으로 완벽한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은 항상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죠.
1986년 <아이시떼르> 초연 때 하나코 형사 역을 맡아서 전무송, 강태기, 최주봉 선배님과 함께 호흡을 맞추었는데, 작품 속에서의 이별의 아픔이 이상하리만큼 강렬하게 제 삶에 영향을 미쳤어요. 그때 이루지 못한 진정한 사랑을 완성하고 싶은 소망이 첫 연출 작업으로 이끈 셈이죠.
살인사건 수사 과정을 둘러싸고 한바탕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어느 순간 진한 아픔 속으로 빠져들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찾아가게 되죠. 한없이 가볍고 무책임한 사랑이 일상화된 이 시대에 사랑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배우인지라 연습과정에서 연기에 대한 충동을 떨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시 해보고 싶은데 다들 나이를 생각하라며 뜯어 말려서….(웃음) 하지만 연습 과정에서 답답한 마음에 직접 모든 배역을 연기해버려 연습장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시떼르>로 연출가 데뷔한 배우 김지숙(2007년)
연극 치료 분야에서도 오랜 기간 일했지요?
한 때 대중들로부터 만들어진 내가 진짜 내 모습인줄 알고 그것에 취해 살던 때가 있었어요. 철없는 시절의 달콤한 향기에 묻혀 지내다보니 남에게 익숙해진 나 자신에 대해서 공허감이 생기더군요. 상품화된 나 때문에 본질적인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깊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대중으로부터 멀리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곧바로 용인정신병원의 환자들과 함께 사이코드라마에 몰입하기 시작했어요. 거기서 환자들을 보며 정신병자와 내가 다를 게 없다고 느꼈지요. 비로소 남에게 익숙해진 내가 아니라 본질적인 나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셈이지요.
그리고 <로젤>을 공연하면서 소위 학교에서 좀 논다는 아이들이 연극을 보면서 펑펑 울 때 저는 연극의 힘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연극은 사람을 바꿀 수가 있고 세상을 바꿀 수가 있어요. 연극에는 치료의 힘이 있습니다.
여성의 성기를 처음으로 끄집어내어 무대에 올린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포스터
이라는 작품도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20대 초반에 영화 <졸업>을 봤어요. 더스틴 호프만이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던 일레인 역의 캐서린 로스를 데리고 달아나는 마지막 장면은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죠. 그 때는 일레인 역할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30년 뒤 로빈슨 부인 역할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죠.
연극 <졸업>에서 로빈슨부인으로 출연한 그녀는 연기인생 첫 파격 노출로 화제를 낳았다
로빈슨 부인의 성격은 어떻게 접근했는지요?
굉장히 ‘쿨’하면서도 뜨거운 여자로 봤어요. 그런 면에서 저의 기본적인 성격에서 출발한 거죠. 연극에서는 로빈슨 부인의 영역이 훨씬 넓어졌어요. 영화에서는 단순히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아들뻘의 남자를 유혹하는 역할이지만 연극에서는 벤자민의 방황을 감싸 안고, 출구로 안내하는 역할까지 하기 때문에 좀 더 섬세한 인물설정이 필요하지요.
영화가 방황하는 청춘인 벤자민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연극은 출연한 모든 사람의 역사를 담고 있어 나이와 계급, 남녀를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작품도 그렇지만 노출신이 파격적이었다고 들었는데요?
직접 보시진 않으셨나요? (웃음) 작품이 원하는 것이니깐 당연히 연출의 지시에 따라야 하지요. 중년의 여성이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청년을 유혹하는 설정을 위해서 많은 고민을 했어요. 결국은 과감하게 상반신 노출로 가자고 해서 용감히 벗었지요. 과거에도 벗는 역할을 하자는 제안이 많이 들어왔지만 극 전개상 타당성이 없어 모두 거절했어요. 벗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욕심은 여배우라면 누구나 다 있죠.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고 하니깐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듭니다.
앞으로 계획은?
행정적인 일은 모두 접고 배우의 길에 매진할 생각이에요. 다만 기초예술연대 집행위원장 역할은 계속 하고 싶습니다. 기초 예술인 연극이 영화와 뮤지컬 등 상업예술에 밀려 고사 위기를 겪고 있죠. 하지만 사실은 상업 예술의 토대가 기초 예술입니다.
현재 영화계를 이끌어 가는 설경구, 최민식, 송강호, 신하균, 문소리, 오달수, 유해진 등이 다 연극배우 출신이고 이들이 없는 한국 영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 부모 없는 자식이 존재하지 않듯 연극이 튼실해야 그 자식격인 상업 예술도 더욱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