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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녀<영혼을 정화시키는 배우>

엑터타임즈 2026년 01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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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건, 참 좋지라이?”

“가요, 이 넓은 세상에 우리 함께 걸어요. 기나긴 고통 끝이 났어요. 살아있는 건 아름다운 것(…) 햇빛 가득찬 거리 가슴을 활짝 열고서, 지난 아픔을 모두 다 잊고 활짝 웃어 보아요. 희망을 버리지 않기를 정말 잘한 것 같죠. 내 눈물이 당신의 뺨을 적시고 있어요. 용기 내어 지내 왔던 날들, 살아 있다는 건 아름다운 것.”

-이 노래를 부를 때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950년 9월 16일에 태어난 김성녀는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대학교수이며 국악인이다. 1988년 SBS <토지>와 1990년 KBS2 <서울뚝배기> 1996년 KBS2 <아내가 있는 풍경> 등에 출연하였지만 <MBC 마당놀이 놀부전>과 <한네의 승천>, <멕베드>, <죽음의 소녀>, <남사당의 하늘>에도 출연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TV 마당놀이와 연극을 넘나들었다.
1990년 단국대학교 국악학과를 졸업했으며 뒤이어 1995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극단 󰡔미추󰡕에 입단하여 현재까지 이 극단의 배우로 활동 중이다. 김종엽, 윤문식와 더불어 마당놀이극에 출연하였다. 그러나 이미 1976년 극단 󰡔민예극장󰡕 입단, 1978년 국립창극단 입단, 1981년 국립극단에 입단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수많은 찬불가를 불러서 가수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2000년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과정이 설립되면서 교수로 영입이 되었다. 2005년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음악극과 학과장을 거쳐 2007년 3월 제5대 국악대학장에 취임하였다. 현재 음악극 전공의 교수로 학장, 대학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가족으로는 남편 연극배우 손진책, 딸 뮤지컬 배우 손지원, 어머니 판소리 보유자 박옥진, 동생 안무가 김성일 등이 있다. 김성녀의 배우 인생은 천막극장에서 시작됐다. 여성국극 스타였던 박옥진의 딸로 다섯 살부터 천막극장 무대에 올랐다. 의상 바구니에서 잠을 잤고 무대가 놀이터였다. 엄마는 ‘예인(藝人)은 고생길이니 넌 절대 하지 마라, 선생님이 되어라’고 하셨는데 지금 둘 다 하는 셈이라고 과거를 회상하였다. 2010년 ‘제20회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했다.

올해 마당놀이 은퇴 선언을 하셨는데요?

청춘을 다 바쳤지요. 이젠 젊은 후배들에게 바통 터치를 하고 링커 역할을 할 때가 왔습니다. 30년 전 우리 세 사람(김성녀·윤문식·김종엽)에서 시작된 마당놀이도 이제는 전환의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함께 10년 이상씩 함께 해 온 제자나 후배들도 많습니다.

제가 대학 강단(중앙대)에 서게 된 것도 마당놀이를 이어갈 후진 양성을 위한 것이었을 만큼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다들 잘 따라 주고 있습니다.

세 분이 함께 서는 무대는 이번이 마지막인가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우리 셋이 이끌어온 마당놀이는 이제 고전으로 남게 되겠지요. 그동안 ‘마당놀이’라고 하면 다들 우리 셋을 떠 올렸잖아요. 이번 공연에서 30년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후배들이 잘 이어 갈 수 있도록 우리들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과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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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마당놀이를 함께 한 3인방 김종엽, 김성녀, 윤문식

세 분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민예극단] 시절이었지요. 당시 연극계는 서양 연극을 주로 무대에 올리곤 했습니다. 이때 허규 전 국립극장장과 연출가 손진책, 배우 몇 명이서 한국적인 것을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했지요. 때마침 MBC 창사 기념 공모에 출품했고, 채택되면서 셋이 같이 무대에 계속 서게 됐습니다.

마당놀이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소리장도입니다. 웃음 속에 비수가 있지요. 30년 동안 매년 마당놀이를 찾는 관객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됐고, 어른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마당놀이는 손자부터 할머니까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유일한 무대입니다. 관객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가려운데 서로 긁어 주며 지내온 세월입니다. 그렇게 30년을 동고동락했지요.

한편, 연극계에서는 연극이 아니라고 하고, 국악계에선 국악이 아니라고 하고.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수십 년 동안 혼자 자생한 게 마당놀이예요. 어떤 장르든 새로 시작하면 인정을 못 받고, 자기들이 할 수 없는 걸 하면 더욱 인정을 안 해요.

외국인들은 가장 한국적인 연극을 마당놀이라고 칭하는데 우리 자신은 마당놀이를 평가절하 하죠. 제가 정극을 하면 ‘어떻게 마당놀이 배우가 정통 연극을 잘 하냐’는 얘기를 해요. 기절할 노릇이죠.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홀로 캐스팅이기 때문에 쓰러지면 안 된다는 그런 비장한 마음이 항상 듭니다. 특별한 운동을 하는 것은 없고 뜨개질을 하면서 공연에 대한 마음 다짐을 하지요.

공연이다, 학교다 늘 바쁘니까 일탈하고 싶잖아요. 잠시 여백을 짠다고나 할까요. 공연 때는 ‘오늘은 관객이 많이 찾아주실까?’ 하는 걱정도 생기잖아요. 그런 생각도 잊을겸 뜨개질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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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회 <이해랑 연극상>은 그녀에게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킨 상이었다.

올해 큰 상을 타셨죠? 수상 소감이 각별하시던데.

예, 올해 이해랑 연극상을 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통 연극은 서양 리얼리즘 연극인데 우리 부부는 전통 연희에 바탕을 둔 한국적 연극 형식을 만든 선두 주자로 외롭게 길을 걸어왔어요. 힘들게 대접도 못 받으면서 ‘우리 연극 지킴이’로 살아 왔는데 앞으로 열심히 활동할 에너지를 주신 것 같아서 감사했죠.

저는 이해랑 선생님과 작업한 마지막 세대에요. 손숙 언니와 윤소정 언니, 김금지 선배와 박정자 선배와는 대략 6∼10년 터울이에요. <삭풍의 계절>이라는 작품을 함께 했어요. 젊은 며느리 역이었는데 대사할 때 같이 호흡하시던 기억이 또렷해요. 그 분의 훈김이 씌워져 모르는 분이 주는 상보다 가깝게 느껴져요.

그러고 보니 뜨개질에 대한 책도 내셨지요?

최근에는 󰡔일곱 가지 마음 담긴 따뜻한 손뜨개󰡕라는 책을 냈지요. 뜨개를 한지는 40년 됐습니다. 뜨개는 거짓말을 안 해요. 한 올 한 올 정직하게 서로 연결되고…. 창의력이자 수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 뜨개질이지요. 늘 뜨개질로 마음을 달랩니다.

그리고 뜨개질을 하면 그걸로 주변 사람들한테 선물도 많이 했습니다. 공연 때 피아노를 잘 쳐 주면 그 분한테 선물도 하고, 제 홈페이지를 관리해주는 분에게도 드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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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을 좋아하여 직접 책으로 엮은 <일곱 가지 마음 담긴 따뜻한 손뜨개>의 표지

남편인 손진책 선생께서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하셨는데 극단 󰡔미추󰡕는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요?

제가 대표를 맡아 이끌어 갑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손진책씨가 섭정을 하지 않겠어요? (웃음) 극단 󰡔미추󰡕는 나름대로 틀이 잡혔습니다. 단원들과 의논해 초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잘 해나가려고 합니다. 덩치를 약간 줄이고 외국인 연출가도 불러들이고, 좀 더 다양해지도록 말입니다.

공부를 늦게 시작하셨지요? 대학 시절에 천안에 있는 단국대학을 갔다가 예술대학 건물에서 김성녀 선생님 사물함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아파 쓰러지는 바람에 대학에 못 갔어요. 전 모든 게 늦깎이예요. 국립극단도 늦게 들어갔고. 애들 다 낳고 35세 때 국악 공부를 시작했어요. 4년 장학생으로 대학에 들어갔어요.

국립극단 후배가 교양 과목 출석을 부르며 ‘체육복 왜 안 입고 왔느냐’고 야단치다 제 얼굴 보곤 놀란 일도 있어요. 수업에 들어오지 말라더군요.

늦깎이 학생으로 공부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그래도 공부할 때 봐 주면 남는 게 없으니까…. 나이 먹은 학생들은 안 봐 주죠. ‘며느리가 더 시어머니 노릇한다’고 그래요. 중앙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10년이 걸렸어요. 성균관대 사회교육원 객원교수를 거쳐 중앙대 국악과 전임교수가 된 것이 49세 때의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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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집안이 그야말로 예술가 집안이시지요?

아버지 고향이 함경도라 이북에 본처가 있으셨는데요, 전쟁 터지기 전에 남한으로 내려 오셨다가 저희 어머니와 만나서 다시 결혼하셨어요. 아버지는 이북에서 연극하고 글 쓰던 분이었는데요, 당시 윤인자 씨라는 배우와 같이 내려 오셨어요. 아마 두 분이 사랑의 도피를 하신 것 같아요.

그 후에 황해 씨, 장동휘 씨 등 연극계 동기들과 활동하시다가 여성 창극을 하던 어머니를 만나셨죠. 그때부터 아버지가 여성 국극 쪽에 눈 뜨시면서 어머니 쪽 세계로 완전히 전향하셨어요.

아버지는 굉장히 멋쟁이였어요. 아코디언, 피아노, 기타 등 못 하시는 게 없었고, 소위 말하는 그 시대의 신남성이라 여자들이 많이 따랐죠. 반면 어머니는 지고지순하고 한국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었어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런 순수한 면에 매력을 느끼셨대요. 그래서 제가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진 부모를 갖게 됐죠.

아마도 저의 끼는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성실하게 가정을 꾸려간다거나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알려진 것처럼 동생 성애와 성아는 각각 판소리 명창과 해금 연주자(한양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고 성일이는 뮤지컬 안무가로 유명하죠.

극장에 대한 추억은?

그 시절엔 특별한 홍보 수단이 없잖아요? 그래서 유랑극단처럼 큰 트럭을 빌려서 의상이나 소품을 다 집어넣고 배우들도 함께 타고 지역을 돌았어요.

배우들이 의상을 입고 악기를 불면서 마을을 도는 게 선전하는 거였죠. 집시처럼 지역을 돌면서 3∼4개월 동안 전국을 순회하는 게 당시 공연 문화였어요.

엄마와 함께 무대에 처음 선 것이 4세 때였을 거예요. 엄마 뱃속에서부터 무대 예술로 갈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지요. 무대는 저의 놀이터였어요.

잠에 빠져 못 일어나면 누군가 아이스크림을 입에 대 줬어요. 그러면 눈 비비며 벌떡 일어나서 무대에서 춤추고 악사들이 반주를 잘못 맞추면 무대 끄트머리에서 바닥을 톡톡 치며 틀린 박자를 지적해 ‘여우’라는 별명도 얻었어요.

배우로서 선천적인 DNA를 타고 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대에 들어서면 먼지 냄새가 있어요. 극장에 들어가서 그런 매캐한 것들을 접하면 ‘아, 여기가 내 물이구나, 싶죠.’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신기가 올라오는 듯, 전율이 일고 흥분 돼요.

텅 빈 객석을 보고 있으면 투지가 생기고, 극장 안에만 들어가면 자신감이 용솟음쳐요. 어떤 배우가 와도 무대에서 붙어보자는 투지가 생겨요.

지금 공연 중인 <벽 속의 요정>에서도 1인 30역을 하는데요. 남들은 “어렵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저는 전혀 어렵지 않아요. 그리고 그동안 다양한 역할을 많이 해왔는데, 마당놀이라는 큰 타이틀에 가려져서 저의 진면목은 숨겨져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지난 날의 작업들이 이번에 집약되어 보여지는 것 같아요.

이력을 보니까 ‘듀엣’을 했다는 것도 나오는데요?

엄마가 국극을 하시면서 고생을 많이 하셔서 늑막염, 결핵 등에 걸려 쓰러지셨어요. 그래서 저와 동생은 대학 진학을 못하게 됐죠. 그래서 제 동생과 함께 ‘비둘기 자매’를 결성해서 까투리 사냥 음반을 냈어요.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집안을 끌어가기 위해서 엄마가 잘 불렀던 민요를 뽑아서 음반을 냈던 거죠. 최초의 민요 듀엣으로 가계를 이끌었죠.

근데 그게 제 정서엔 너무 안 맞았어요. 방송국에 가면 인사하고 다녀야 하는데, 전 그게 싫어서 화장실에 숨어있고 동생을 대신 시켰어요. 그리고 그때는 가수라고 하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 것들이 저는 너무 싫었어요.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 사람 대접을 받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떳떳하게 하자고 마음을 먹게 됐죠.

그래서 가수 생활을 조금 하다가 가야금 명창 인간문화재였던 박귀희 선생을 찾아갔어요. 근데 그 분이 갑자기 “네 엄마 재능을 보면 너는 말할 것도 없다”면서 곧바로 저를 전수생으로 받아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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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인 남편 손진책은 배우 김성녀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반자이다

손진책 선생님과는 그 때 인연으로 결혼하게 되신 건가요?

아버지는 여자들에게 워낙 인기가 많았고, 본인도 여자를 좋아하셨어요. 저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애인도 있었죠. 그리고 엄마는 아버지에게 속상한 걸 맏딸인 저에게 다 털어놓으셨어요.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전문적인 직업을 얻어서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독신주의자였죠. 근데 손진책 씨도 연극하고 결혼했으니 가족을 고생시키면 안 된다고 하면서 독신주의를 선언했대요. 그래서 두 독신주의자가 맘 놓고 같이 다니다가 결혼을 하게 됐어요.

8남매 집안의 장남과 결혼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손진책 씨는 여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도 안 걸고, 늘 작품 얘기만 하는 진지한 청년이었어요. 저는 잘 웃고 까부는 스타일이었고요. 연극이 끝나고 술자리에 가면 저는 항상 크게 웃어요. 그러면 손진책 씨가 성냥개비를 잘라서 던지는 거예요. 웃지 말라고, 너무 넘친다면서 저를 자제시켰던 거죠.

그러다가 <한네의 승천>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술을 마셨는데 감정이 격해지면서 그렇게 눈물이 났어요. 술이 취해서 통곡하는데, 그 다음 날 손진책 씨가 전화로 “3일 동안 근신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뭔데 그러나 싶었는데, 그 후로 미술관이나 음악회에 같이 가면서 만남을 가졌어요.

근데 저희는 데이트 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손진책 씨는 늘 예술에 대해서 얘기했고, 좋은 배우 만들기 프로젝트로 들어간 것처럼 저를 대했어요. 늘 아주 작은 소줏집 같은 데만 데려가고, 통행금지 걸릴까 봐 뛰고, 돈이 없으니 택시를 태워 보낸 적도 없고, 매너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게 연애인가 싶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사고가 생겼어요. 저녁에 술을 마셨는데 통행금지 시간을 넘긴 거예요. 그 날 저희 큰 아이가 생겼죠. 독신주의자 둘이 만나서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결혼했어요. 결혼할 땐 둘 다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으로 가난한 연극쟁이에다가 8남매의 장남인 사람에게 겁도 없이 시집을 갔죠.

저는 순수한 걸 좋아하는데요, 손진책 씨가 참 순수하고 계산을 몰랐어요. 돈을 모르고, 하늘의 별을 따는 사람 같은 연극인들의 삶 자체가 저에겐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고생하더라도 같이 해보자는 마음에 결혼을 했어요.

극단 [미추(美醜)]는 어떤 극단입니까?

손진책 씨가 결혼한 지 10년 만에 극단 [민예]에서 손진책 연출연구소로 독립해서 나왔어요. 허규 선생님한테 배운 연극관에 자기 색깔을 입혀서, 마당놀이라는 가장 새롭고 한국적인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나왔던 거예요. 그게 [미추(美醜)]가 됐죠.

올해가 결혼 30주년이자 극단 [미추]의 20주년인데요. 손진책 씨는 <벽 속의 요정>이 결혼 30주년 기념 선물이라고 하더라고요.

은 남편이신 손진책 선생님의 애정 어린 선물인가요?

어느 날, 생전 애정 표현이라고는 모르는 남편이 영국에 다녀오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을 사왔는데 쑥스러워서인지 곱게 건네주지도 못하고 책상에 툭, 던져놓고 간 선물이 희곡 대본이었어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다리오 포가 아내인 여배우 프랑카 라메를 위해 쓰고, 연출을 했다던 <One Woman Play>라는 1인극이었지요.

그런데 그게 오늘 내일 하다가 계속 미뤄졌어요. 그러다가 일본 작가 후쿠타 요시유키가 쓴 <벽 속의 요정>이 3년 전쯤 일본서 공연돼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 일본에 친분이 있던 분이 제게 ‘한국에서 이 공연을 해 보라’며 직접 추천을 해줬어요.

스페인 내전 때 사상 문제로 숨어 다니다가 벽 속에서 40년 간 숨어서 살았던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실화인데, 그 이야기를 배삼식 작가가 우리 현실에 맞춰서 각색한 작품이지요.

예전에 외국에서 오신 평론가들이 원작보다 더 훌륭한 작품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더라고요.

“한국에서 본 연극 중 최고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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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매진행렬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벽속의 요정>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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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매진행렬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벽속의 요정> 포스터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 작품은 제게 정화를 안겨주는 작품이에요. 연극은 관객이 있기에 존재하는 거잖아요. 초연 때부터 10번 넘게 극장에 오신 분이 여럿 있어요. 오실 때마다 울고 가시더라구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혼신의 힘을 쏟지 않을 수 없죠.

<벽속의 요정>은 한국 전쟁 때 좌우 이념 대립의 광풍 속에서 벽 속에 숨어 30년 세월을 살아낸 아버지, 남편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 하며 묵묵히 생계를 꾸려가는 어머니, 벽 속에 요정이 사는 줄로 알다가 커가면서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되는 딸이 만들어가는 가슴 뭉클한 가족애를 그리는 연극이죠. 관객들도 처음엔 그냥 왔다가 나중에는 꼭 가족을 모시고 오세요.

혼자서 연기하시려면 힘드시지요?

2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사와 노래를 소화하고 나면 힘이 드는 것도 사실이죠. 남자 배역과 노래까지 소화해야 해 보통 모노드라마보다 힘이 곱절로 들어요.

하지만 관객에게 ‘연기란 이런 것이구나’, ‘배우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동료 배우들에게 배우로서의 전형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나구요.

앞으로의 계획은?

<벽 속의 요정>을 2005년에 시작해서 꼭 10년을 채운다고 했는데 이제 6년째네요. 그리고 힘 떨어지기 전에 여러 작품에서 배우로서의 모습을 많이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중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한국적인 음악극에 대한 실질적인 교재가 전무해요. 그래서 제가 상반기에 책을 두 권 썼는데요. 앞으로도 실기인을 위한 교재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최종적으로는 건강해서 눈을 감기 전까지 무대에 섰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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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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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리뷰

‘Until the Day’에 이은 통일 연극의 결정판 – 댄스컬 〈통일 리허설〉 리뷰

2026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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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리뷰

불의한 세상 한가운데서 행동하는 신앙을 묻다 국제성경연극선교단 제4회 정기공연 전율의 잔

2026년 01월 29일

공연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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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소식

2026년을 열어제치는 공연예술계의 신호탄 – 창작산실 드디어 시작하다

2026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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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소식

통일은 완성이 아니라, 연습이다 – 댄스드라마 〈통일 리허설〉, 대학로에서 초연

2026년 0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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